그리움 맺히거든

더는 김을 매지 않을 거야

by 이봄


궁금한 얼굴들이 궁금한 날

더는 마당에 풀들 뽑지 않기로 했다.

설령 수풀이 우거져 호랑이 한 마리쯤

산다면 얼마나 좋으랴.

저 먼 시베리아의 초입 아무르강

어디라고 치자.

줄무늬 선명한 조선호랑이 한 마리

연해주의 들판을 가로질러

콩 싣고 떠나는 배 파시를 이루는

두만강을 헤엄쳐 건넜다 하고,

풍문처럼 내달린 녀석 마침내 백두의 땅

굵은 등줄기를 타고 태백을 지나

소백에 이르렀다는 이야기 듣고도 싶다.

푸른 꿈 알알이 박힌 다도해쯤이야

한 번의 웅크림으로 뛰어건너

백두의 끝, 한라의 한 점 푸른 꿈

여기 가파도 조그만 수풀이면 또 어떨까?

그리움은 밑도 끝도 없이 그렇게

피고 맺히는 꽃일지도 모른다.

호환마마의 호랑이여도 때로 꿈꾸는

그리움일 수 있듯 들풀 하나마다 또 얼마나

많은 그리움 피고 질지 알 수가 없다.

굳이 눈물처럼 아롱지는 그리움

뽑고 꺾을 일이 없겠다 싶다.

내 품의 그리움만 어디 절절하고 먹먹하랴.

미물이 어딨고 잘 난 놈 또 뭐가 있을까.

내리는 비 온몸으로 받아

제크의 콩처럼 하룻밤 자고나서

하늘 저기 어디쯤 하얀 꽃송이 맘껏 피워라.

어느 날 불쑥 얇은 나무토막

툭 던져놓고 말 한마디 보태었다.

옆집 화단 정리하며 회양목을 뽑아버리더라.

너 생각나서 잘라왔다.

도장 하나 파던지...

약으로 쓰려고 눈을 씻고 찾아본들

어디 개똥이나 하나 찾을까?

국을 끓여먹었는지 멋대가리 하나 없는,

질박을 넘어 투박한 남자들 늙어 애처롭다.

이왕지사 주는 나무 한 토막,

너 생각나서 형이 자르고 말려 가져왔네.

붓글씨며 어디 그럴싸하게 도장 하나

꾹꾹 눌러찍으면 좋을 거 같아서...

아, 이것도 무심함이 뚝뚝 떨어지는 말인가?

모르겠다.

투박하고 멋 없으면 어떠랴.

피붙이 뭉근한 그 마음 어찌 모를까?

영화의 대사도 마구 중첩되는 밤이다.

"어디 우리가 돈이 없지!가오가 없냐?"

맞다. 멋 없고 투박한 사내들 형제로 만나

머리카락 백발로 저물도록

"어디 우리가 돈이 없지! 우애가 없었더냐?"

쪽팔리지 않게 살다 가자꾸나.

줄무늬 선명한 조선호랑이 한 마리

가파도에서 포효하고,

더는 마당의 풀 뽑지 않기로 했다.

도로롱 풀잎마다 그리움 맺힐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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