씀바귀
섬은 오늘도
가랑이 붙들고 끝내 놓아주지 않았다.
서걱이던 억새 이파리
서로를 할퀴어 만신창이가 되고,
초록으로 어여뻤던 애플민트는
바람에 데여 잎끝이 검게 변하고 말았다.
마당 한켠 작은 텃밭 기세 좋던 옥수수
서너 대 허리를 분지르고 말았다.
꼬부랑 해녀 할머니 마음 무너지는 소리
우지끈 우지끈 애처롭기만 한데,
바람은 사납고 신경질적이어서
말을 붙이기도 조심스러웠다.
잔뜩 성난 놈의 심통에 섬의 고요는
벌써 사흘째 달아나버렸다.
말릴 수가 없다.
막무가내 귀를 닫고 요지부동 눈을 감았다.
섬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난장을 만들다가도 겅중겅중
검둥강아지 돌아치듯 반색을 한다.
알 수 없는 게 섬의 날씨라고 하더니만
섬의 날씨를 손아귀에 틀어쥐고서
조변석개로 쥐락펴락하는 녀석이 바람이었다.
바람의 변덕을 누가 알까?
어느 마음 너그러운 이 있어
바람을 달랠 수 있을까?
천둥벌거숭이로 날뛰는 바람은 떼 쓰는
아이와도 같아서 무책이 상책일 뿐이다.
이러다 발목 잡혀 섬 사람이
되는 건 아니겠지?, 쓸데도 없는 걱정을
하기도 하고, 이미 마음은 바다를 건너고
섬을 뛰어넘어 고향으로 달려가고 있으니
조바심에 입술이 탄다.
신발끈 조여 묶은지 이미 여러 날.
묶고 풀고 손가락만 바쁜 날에
바람은 조롱하듯 마당을 가로질러
쏜살같이 달아난다.
입이 쓰다.
혀는 까끌까끌 한 움큼의 모래를 씹은 것만
같고, 가뜩이나 없는 입맛은 천 리 밖으로
달아났는지 돌아올 기색도 없다.
쓴 맛 단 맛 다 맛보고 살았노라
인생풍파를 얘기들 하더라만
찬란한 섬의 봄날에 두 볼이 미여터지게
씀바귀 한움큼 씹고야 말았다.
고놈 참 쓰기도 하지!
말을 뱉고서는 더는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인생 수업료 제대로 지불했다 치면 돼!
라고 얘기 하기엔 내 나이가 부끄럽고,
울그락 푸르락 성을 내기엔 내 살아온 날들이
창피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지고야 말았다.
허허, 고놈 참 쓰기도 하지!
그래? 이왕지사 씹은 씀바귀라면 달아난
입맛이나 꽁꽁 포승줄로 묶어 데리고 오렴.
봄날 시작된 이 쌉쓰름 깔깔한 날들
그저, 허허 고놈 참 쓰기도 하지...
섬에서의 마지막 발 떼는 순간에 짙푸른
저 바다에 몽땅 버리고 가마.
어차피 입안은 쓰디 쓴 맛에 얼얼하게
마비가 되고 말았다.
씀바귀 같은 날들에 말이 구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