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켜켜이 쌓여 섬이 되었다
기다렸습니다. 섬의 또 다른 이름이 있다면 분명 기다림이었을 겁니다. 풍랑이 일어도 배는 뜨지 않았고, 스멀스멀 안개가 기어올라도 그랬습니다. 더는 닿지 못하는 것들이 늘어날수록 그리움은 짙푸른 파도로 깊이를 더하고야 마는 섬. 그래서 섬은 그리움의 말들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땅덩어립니다. 한 겹 한 겹 풀어헤쳐진 섬의 밑바닥에서 만나게 되는 최후의 말은 그래서 그리움입니다. 그리워 기다리게 되는 마음. 그러다가 마침내 끝내 기다림조차 기다리고야 마는 시간에 앉아 섬인 것을 깨닫고야 말았습니다.
비 그치고 말갛게 갠 하늘을 기다렸습니다. 섬 제비 낙엽처럼 떼로 몰려다니는 하늘은 며칠씩 심통을 부리고, 빤히 바라보이는 섬은 너무도 멀었습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것만 같았던 땅이 아득히 멀어지는 시간, 수면을 떠돌던 가랑잎 하나 꼬르륵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야 말았습니다.
이틀이나 여객선은 결항입니다. 어쩌다 해양조사선 한 척 까불까불 파도를 탔지요. 시야에서 뛰놀다 이내 사라지기를 반복하다가 멀리 사라지는 날, 바다엔 암소 한 마리 애처롭게 울었습니다. 마치 제 새끼를 부르듯 뿌우웅 뿡 바다가 울었습니다. 안개는 모든 길을 덮었고, 모든 흔적을 지워버렸습니다.
길 잃은 것들이 울었습니다. '음매 음매' 소울음으로 울었고, '뿌우웅 뿡' 등대로 울었습니다. 울부짖는 소리는 해안을 따라 퍼졌습니다. 해무에 갇혀 헤맬지도 모르는 배들을 향해 소리로 손사래 쳤지요.
"오지 마시어요. 갯바위가 솟고 암초가 사납게 울어요. 그러니 이리로는 오지 마시어요"
목이 쉬도록 바다는 소울음으로 울었습니다.
요일도 모르고 날짜도 알 필요가 없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볕이 나는지 아니면 구름이 가득한지 궁금할 뿐, 째깍이는 시간도 별 의미가 없는 섬에서 시간은 많이도 흘렀습니다. 알게 모르게 섬은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섬 색시 초록으로 술렁이던 보리밭은 수염이 허옇게 샌 초로의 늙은이들이 뒷짐을 지고 헛기침을 해대고 있습니다. 발갛게 상기된 새색시들의 수다로 부끄러웠던 날들이 엊그제였는데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기다렸습니다.
툇마루에 걸터앉아 엄마가 오기를 기다렸고, 집배원의 손에 들려진 그녀의 답장을 기다렸습니다. 까치가 깍 깍 울기를 기다리기도 했고, 때로는 흙먼지 일으키며 내달리던 완행버스를 기다렸지요.
돌아보니 참 많은 것들을 기다리며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길 게 뺀 목으로 마음 설레며 기다리던 것들이 하나씩 둘씩 곁을 떠난 지금에도 나는 기다립니다. 돌아오지 못할 것을 부질없이 기다리기도 하고, 카톡 카톡 까치를 대신해 날아드는 반가움을 기다리기도 하지요. 청보리가 황금보리로 변해가는 섬에 엎드려 오늘도 기다림을 기다립니다.
행여나 그대 바다를 건너오시려는가 밑도 끝도 없는 기다림도 보태면서 보리 이삭 출렁이는 바다를 봅니다. 뿡 뿡 뱃고동 우렁차게 여객선이 들어오면 좋을 5월의 한 날이 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