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묵밥을 먹으며

주절주절 잡생각 하나....

by 이봄

"참나무 6형제"


어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나무가 참나무다. 우리 산에서 가장 흔한 수종이기도 하고, 도토리와 도토리묵으로 친근하기도 해서 이름도 '갑돌이와 갑순이'처럼 웬지 더 정감 있게 다가서는 나무이다.

굴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상수리나무, 이렇게 6형제를 통칭해서 참나무라 부른다. 도토리를 맺으니 도토리나무라고도 하는데 이름이야 어떻든 뭐 대수랴.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가을이면 알알이 도토리로 입맛을 돋구니 말 그대로 진짜나무 '참나무'란 이름이 딱이다. 지금이야 별미로 묵을 찾는 시절이 되었지만 예전엔 주린 배를 채워주던 구황식물로써의 역할이 컸다. 오죽하면 '들에 풍년이 들면 산엔 흉년이요, 들이 흉년이면 산엔 풍년이 든다'는 말이 있다. 가난한 민초를 돌보는 하늘의 뜻이 거기에 있다는 말이겠지.

"주둥이와 입이 따로 있나?"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긴다고 오래도록 회자되는 이름이 참나무에도 있다. 참나무 6형제 중 묵을 쑤었을 때 가장 맛이 좋고, 도토리쌀도 많이 나는 나무가 상수리나무인데 녀석의 이름이 '상수리'가 된 이유가 재미 있다.

선조가 백성을 버리고 몽진 길에 올랐을 때 입맛이 있네 없네, 밥맛이 좋네 나쁘네 타박에다 까탈까지 부렸던 모양이다. 하루 세 끼니를 챙기는 것이 어찌나 어려웠을까? 그 와중에 도토리묵을 구해 수라상에 올리니, 우리 선조께서 매우 흡족해 하셨단다. 후로 종종 묵을 찾으시니 나무의 이름도 '수라상에 오른 나무'라 하여 상수리 나무라 했다는데 도루 묵으로 강등 된 '묵'이 들었으면 땅을 치고도 남음이 있겠다. 금수저 중에서도 최고의 금수저인 임금께서야 국가의 존망이 '바람 앞의 등불'이어도 밥맛타령으로 날을 지새셨으니, 참 대단하다 해야는지. 목구멍이 포도청이다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살아가는 수 많은 '주둥이'들도 별미로 찾는 묵 한 사발이 예사롭지 않다.

"사는 건 어떠하신가?"


피골이 상접함을 넘어 백골만 간신히 간직한 이파리 하나 공사장에 날아들더니 묻는다.

"사는 건 어떠하신가?"

"뭐, 나야 그냥 저냥 .... 그대는 뉘신데 남 사는 꼬라지를 다 묻는 거요?"

"보면 모르오? 난 신갈나무라 하오. 발 없는 말 천 리를 간다고 귀동냥이 버릇이 되어나서...."

신갈나무 이파리 잎맥만 앙상하게 남아 골골을 떠돌다가 웽가당 뎅가당 사납고 어지러운 현장에 깃들었다. 초록은 썩어 흙이 되고도 남을 세월을 건넜는가 삼엽충과 동무하고 공룡과 일 촌을 맺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장돌뱅이 서넛 그늘에 앉아 짚신에 엉긴 흙먼지 털어내고 나뭇잎 한장 뜯어내어 짚신 바닥에 깔았다. 괴나리 봇짐 주섬주섬 뒤지더니 나뭇잎에 곱게 싼 떡 한덩이 꺼내어 들고 요기를 한다.

"이 고개만 넘으면 포천장이 바로던가?"

두런두런 다리품 쉬어가던 나무. 그 이파리 하나 세월을 건너와 여기에 왔는지, 스티로폼 백발처럼 뒤집어쓰고 발치에서 묻는 듯 하다.

"사는 건 좀 어때?"

정말, 사는 건 좀 어때? 자문을 한다지만 결국 대답이야 뻔하지 뭐. 그냥 저냥 그래. 바가지로 흘린 땀 시원한 묵밥 한 그릇 비워내며 중얼거리는 말 한 마디가 사는 모양이지 별것 있나?

"아, 시원하게 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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