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뿔도 없습니다
없다는 게 자랑이 아님을 모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뭔가 있는 듯 포장을 해야하고, 있어 보이게 허풍을 떠는 게 세상 사는 방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없다 얘기하는 건 치부를 들어내놓고 실랑이를 벌이는 멍청함이 맞습니다. 약점을 적나라하게 들어내고 무슨 거래를 제대로 할까요?
사자의 갈기는 약점을 가리고, 오히려 모골송연하게 상대를 제압하는 장점으로 변이하기도 한답니다. 실제보다 거대해보이는 잇점에다 목덜미의 치명적 약점을 보완하는 일거양득의 묘수가 갈기로 나타난다는 말이겠죠. 죽고 먹히는 건 약유강식 처절한 짐승들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사람이라고 뭐 다를 것 있을까요?
아는 사람이 페북에 글을 올릴 때마다 이런 표현을 합니다.
"○○님이 ○○님의 집구석에 있습니다"
지금의 상태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휴일이든 아니면 정신 못 차리게 바쁜 날이었든 그는 안주 하나 사들고 그의 집구석에서 제일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얘기겠죠?
그렇습니다. 그 말이 재미있기도 하고, 어쩐지 여유로와 보여서 참 좋았습니다. 괜시리 웃게 되는 표현입니다.
나는 이렇게 상태표시를 할까요?
"래춘님이 래춘님의 방구석에 있습니다"
집이라 표현할 집이 없습니다. 물론 자가이든, 전세이든 전제조건이 있겠지만 그렇습니다. 물론 없다고 절망하고 주눅들어서 살지만은 않습니다. 때로 자괴감에 우울도 하고, 처진 어깨로 길을 걷기도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없습니다. 손에 쥔 것도 없고, 알량한 저축도 없습니다.
그러니 방구석에 있겠지요.
엊그제 별 볼일도 없는 글이지만 이런 댓글이 달렸더군요.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 작은 위로를 받아요. 캘리그라피도 맘에 들고요"
그래서 그 글에 나는 또 이렇게 댓글을 달았지요.
"감사한 마음입니다. 작은 위로라도 느끼게 된다는 것도,
그런 글 일 수 있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리고는 첨부의 말 하나 더 적었습니다. 쓰고 또 쓰는 건 내게 일종의 정화의 시간이라 좋기도 합니다. 스스로를 위무하고 좌절하지 않게 하는 꿈이기도 하고 , 쌓인 거지같은 것들과 마음 말끔이 씻어내는 정화의 시간이 맞습니다.
무시하라 하지요.
치부 오래 전에 들어냈으니 더는 가릴 것도 없습니다.
무시해서 행복하다면 그러라 하지요. 까짓 거 숨 크게 들이마시면 그만입니다. 언제 있다 했나요. 없습니다. 없으니 이러고 있지요.
몸값, 잣대가 뭔지 모르겠지만 오해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최저시급에 저울질 당하는 인생이라지만 아시나요?
그리 가볍지는 않습니다.
내 삶의 몸값은 그대들의 저울이 아니라오!
내 저울에 내가 제리다. 편파적어도 어쩔 수 없지요.
삶은 결국 내 몫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