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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송 캘리 탁 맛있는 인생
가을...
당신이 있어 붉어지는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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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봄
Oct 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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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처 여름을 정리하기도 전에 가을이 왔어.
뜨겁던 햇살은 어디로 갔을까?
올해 들어 처음으로 보일러를 돌리던 날,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렸지.
반바지와 반팔 티셔츠를 걸치고
편의점을 다녀오는데 나도 모르게 주절거렸어.
"아, 춥다. 추워!"
계절은 이미 옷깃을 여미게 하는 시간이 됐고,
초록이 짙어 어둡던 산 그림자는 머지않아
알록달록 꽃불로 타오를 터야.
등성이마다 하얗게 억새꽃 바람에 나부끼겠지.
저 닮은 바람은 하얀 눈보라로 골짜기 휘집고서
계절을 재촉할지도 모르겠다.
이미 시간의 고삐는 풀렸다.
올망졸망 기대고 선 산마루는 가을을 맞았고,
이내 또 다른 계절로 뜀뛰기를 할 터다.
기다리지 않고 머뭇거리지도 않는 게 시간이고
인생이기도 하겠지.
기대 졸았다. 많은 날들이 그랬다.
아니지, 기대 사는 게
인생이라서 사람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기댐일 게다.
사람인人의 형상은 이미 기대어 사는 모습이기도 하고.
하루하루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나누는 수다는 포근한 베개였고,
눈을 맞춰 느끼는 감정들은 따뜻한 이불이었다.
인적 없는 골목에 버려지는 말이 아니었다.
꼬깃꼬깃 구겨진 말들이 한낱 휴지조각으로 떠돈다면
얼마나 서글픈가?
채 여물지도 못한 땡감 하나 풀숲에 떨어지면 시고, 아린 말들만 웅성웅성 벌레처럼 기어 다니겠지.
하지만 찬 이슬 몇 날 며칠 해걸음 전에 내리고,
뉘엿뉘엿 단풍 사그라지는 날 즈음에 껍데기 벗겨진 놈
바람 좋은 추녀에 매달면 곶감이 되듯, 어쩌면 그런 날
을
기다리며 나는 네게 기대었는지 모르겠다.
기대어 졸았다.
포근하고 푸근한 어깨가 한없이 좋았다.
도낏자루 서넛은 썩었을 날들이었을
거야.
졸다 깨다를 반복하며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에
촉촉이 젖었다.
어째 싱숭생숭 맹숭맹숭 물에 물을 탄 가을이
저물고 말았다.
"제기랄! 뭔 놈의 날이 이리도 춥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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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봄
보글보글 찌개가 끓고 양념같은 이야기들 곁들이는 것. 삶은 그런 거야. 글 송송 캘리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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