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으면 좋겠다

그런 날이라면 머뭇거리지 않겠지

by 이봄

높다란 바지랑대 끝에는 파란 하늘이 연못처럼 걸리고, 눈 시리도록 하얀 흰구름 하나쯤 멋스럽게 흘렀으면 좋겠다. 가끔은 멧비둘기 두엇 희롱하며 날아도 좋을 테지만 희롱에 지쳐 나뭇가지에 앉았어도 나쁠 거 없겠다 싶고, 바깥 마당엔 널따랗게 발을 펼치고서 붉디붉은 가을 고추 풍성하게 널었으면 좋겠다. 바람은 제 알아서 널린 고추에 스며 바스락바스락 말리겠지. 푸른 댓잎은 추임새도 곱게 파랗게 서걱이고, 찰랑이는 물결 따라 춤사위로 번져가는 갈대는 흥에 겨웠다. 흔들려서 아름다운 것들 바람결에 어깨를 들썩이면 바라보는 나는 엉덩이 들썩이며 말간 미소로 화답할 터다.

빨랫줄엔 뽀송하게 빨래가 마르고, 쓰윽 쓰다듬는 손바닥엔 햇살이 한 줌은 쥐어질 테지. 마당을 가로질러 뛰어가는 닭도 서넛 종종거리고, 툇마루 구석진 곳에선 고양이 한 마리 늘어진 낮잠에 가릉 거리면 그만인 그런 거. 자다 자다 일어나 겅중겅중 마당을 뛰노는 바둑이 한 마리는 뭐랄까? 덤으로 받는 재미겠지? 그래, 그랬으면 좋겠다. 오래된 기억 속에서 소녀가 되살아나고, 거뭇거뭇 수염이 자라나는 남자 녀석 하나 부끄러워 얼굴 붉히면 석양은 덩달아 타오르겠지.

뭘 하는지? 뭘 생각하는지도 가늠이 되지 않는 날에 난 다만 어떻게 하면 아니지, 어떤 날이면 툭하고 끊어내 행복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어. 웃기지? 떨어져 뒹굴거나 퇴색돼 잊히거나 하는 따위의 것들, 음습한 골목을 스산하게 휩쓸고 가는 바람이라지만 막상 마주하고 나면 앓고야 말지. 고뿔이야. 기침이 나고 심장은 미친 듯이 날뛰고, 코는 얼얼 얼 해지지. 참아도 참아도 참을 수 없는 재채기는 먼저 달려와 기다리고 있었지.

낮 달과 황혼의 해가 한 하늘에 매달려 반짝이는 날에 별은 풍경처럼 바람에 흔들렸다. 찰랑찰랑 댕겅댕겅 풍경이 울었다.

안 좋은 예감은 늘 현실이 된다고 나는 예서 말을 멈추려 해.. 어쩐지 주절이는 말이 부메랑이 될까 싶기도 하고...


다만, 봄날의 풍경처럼 연둣빛 햇살 곱게 아장거려도 좋고, 숨 헐떡여 매캐한 연기면 또 어떨까? 그런 생각을 했어. 툭하고 떨어져도 좋겠다 싶은 그런 날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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