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붑니다

그것도 태풍입니다

by 이봄

메뚜기 떼가 휘몰아치고 나간 뒤에 담배 한 대 피워 물었습니다. 계절을 재촉하는 바람이 불었지요. 스산하고 서늘했습니다. 옷깃을 여미게 되더군요. 몇 날 며칠이 지나면 '에고, 춥네'를 입에 달고 살아야만 할 겁니다. 아니, 벌써 춥더라고요.

"에이,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누군 빨리 걷고 싶지 않은 줄 알아요? 그게 맘처럼 안되니 그렇잖아요."

지팡이 움켜쥔 백발의 할머니가 얘기를 했습니다. 그녀를 부축하고 있던 그녀의 남자는 더는 말을 잇지 않고 있었습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서 얘기했지요.

"미안해. 잠깐 여기 앉았다 가자!"

투닥투닥 도란도란 한참을 앉아서 얘기를 했습니다. 세월을 이길 수야 없습니다. 기력은 노쇠해지고, 여기저기 삐그덕이는 몸뚱이는 마음 따로, 몸 따로 황혼을 물들입니다.

담배 한 대 피우노라니 부럽기가 한이 없었습니다. 기대어 걷는 모습이 얼마나 좋던지요? 한참을 듣게 되더군요. 더는 꿈 꾸지 못할 그림이었습니다. 바람만 스산하게 불었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꾸역꾸역 출근을 하고 일도 합니다. 중요하지요? 그렇지만 순간순간 울먹이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때로 턱까지 차오른 아픔이 왈칵 눈물을 쏟으려 합니다. '말자! 그러지 말자!' 다독이는 순간이 반복됩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시간이 약이다'한다지만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요원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입에서 군내가 납니다. 종일 있어야 말할 상대가 없으니 입을 다물게 됩니다. 들어줄 사람이 없는데 혼자 주절대기는 좀 그렇잖아요. 미친놈이죠? 허공에 대고 헛소리 삑삑, 허우적이면 미친놈이 맞습니다. 다문 입에는 곰팡이 피고 거미줄도 몇 가닥 쳤겠구나 싶습니다.

골목에서 졸고 있던 바람들이 떼로 몰려들었습니다. 얌전하던 길고양이 한 마리 느닷없이 발톱을 세우고, 게으른 개 어슬렁이더니만 컹컹 송곳니를 드러내며 울부짖습니다. 접시 위에 토막 난 닭마저 부리를 번쩍이며 독수리처럼 날아드는 것만 같습니다. 아, 진퇴양난입니다. 애초에 없던 바람, 슬그머니 가슴을 파고들더니 태풍으로 몰아칩니다. 이 어여쁜 가을에 뭔 난리일까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