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는 여전히 좁은 길들을 돌아 콘크리트 숲으로 가고 있다. 사람들의 욕망이 녹아든 도시는 화려하게 치장하고서 걸음
걸음을 멈추게 한다. 마치 독이 든 사과처럼 치명적인 유혹이다. 좀처럼 뿌리치기 힘든 유혹에 사로잡혀 사람들은 부나방처럼 도시로 몰려들고, 도시는 점점 더 사납게 덩치를 키우고야 만다. 어김없이 골목 어귀를 돌아서면 공룡 같은 도시가 아가리를 벌리고 기다리고 있다. 침을 뚝뚝 흘리며 모든 것들 먹어치울 듯 기세가 등등하다. 먹구름에 기대 선 마천루는 오늘따라 더 을씨년스럽고, 어쩐지 거대한 무덤처럼 적막하다.
잭의 콩나무일까? 대지를 박차고 일어서서 마침내 구름을 뚫고 하늘에 맞닿은 건물은 끝없이 솟아나는 욕망의 또 다른 얼굴일지도 모르겠다. 외눈박이 거인이 사는 하늘나라에 오르려는 마음. 너도 나도 그 하늘계단을 만드는데 마음 조각 하나쯤은 보태었을 테다. 우후죽순 돋아나 허위허위 기어오른 그 끝에 외눈박이 거인이 기다리고 있길 소원했겠지. 오늘도 꾸역꾸역 밀려드는 도시를 향한 걸음들이 소원 하나씩 빌며 하늘계단 하나를 만든다.
'마지막'란 말을 쓰고 속으로 읽는 것만으로도 말이 주는 외로움과 쓸쓸함을 마주하고야 만다. 낙엽 뒹구는 거리라던가? 아니면 갈대 바람에 위청이는 호수를 떠올리게도 된다. 끝이란 어떤 식으로 포장을 하든 그렇다. 뒷모습 가득 쓸쓸함이 달라붙고 차마 돌아보지 못하는 절망이 덩달아 발맞춰 걷는다. 원하지 않아도 같이 해야만 하는 운명 같은 동행.
도란도란 정답게 대화 나누며 걷는 길이라면 늦가을의 휑한 느낌은 없을 테지만 침묵만 가득한 길은 마지막이란 말들로 도배되고 다문 입은 더욱 굳게 앙다물게 될 터였다.통하지 못하는 마음이 백이면 뭣하랴? 끝이란 그런 거다.
헐거워진 삶에 매듭 하나 단단히 묶으려 한다. 늘어지고 상처 난 길을 당기고 묶어 풀리지 않을 매듭이라면 좋겠다.
예쁘고 향기로운 말들이 끊이지 않기를 소원했다. 날마다 새로운 말들과 이야기로 고백할 수 있기를 또한 빌었다. 먼 섬, 제주의 가파도 벽면에 주문을 외듯 말을 붙이고, 이야기를 그렸다. 그 많은 말들은 어디에서 졸고 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내 욕망은 말들이 뛰노는 세상이다. 봄이면 향기롭게 피어나길 바라고, 여름이면 시원한 산바람이었으면 한다. 가을이 울긋불긋 꽃불로 타올랐으면 바라고, 겨울이면 포근한 솜이불처럼 함박눈으로 나부꼈으면 했다. 성기지 않은 마음에 촘촘하게 꽂아둔 꿈들 봄날의 들풀로 움틔웠으면 좋겠다.
끝이 있으니 시작이 있는 거야 떠들고야 만다.
그대에게 아직 하지 못한 고백들이 별처럼 찰랑이고, 나의 시간은 여전히 그대를 향한 발걸음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