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글 송송 캘리 탁 맛있는 인생
지글지글 자글자글
밥을 볶아요
by
이봄
Jan 6. 2020
아래로
투닥투닥 겨울비 청승을 떨 던 날,
철새 둥둥 물결을 타는 강변을 달렸습니다.
이 길은 우산 같은 연잎 초록으로
너울대던 길이었습니다.
주먹만 한 꽃봉오리 질끈 잘라다가
그림처럼 어우르던 여름이 있었습니다.
예쁘고 고왔던 시간입니다.
어찌어찌 말이 엉키고
시간은 또 제 먼저 알아 실타래로 꼬였습니다.
어깨는 늘어지고 가슴은 물먹은 솜뭉치가
되고야 말았습니다.
꾀를 부리던 당나귀도 아닌데
허우적허우적 솜뭉치 짊어졌던 가을은
정말 가을이었을까요?
무심하게 세월은 빠르기만 했습니다.
자글자글, 지글지글 소낙비 몰아가듯
기름 두른 팬에서 채소가 익었습니다.
고소한 냄새 주방을 채우고
쏴아 몰아치는 빗줄기는 귀를 호강시켰습니다.
굶어 죽지 말라고 홀아비 등가죽 덥혀주는
즉석밥이 차고 넘쳤지만
아, 그런 거 아시나요?
먹다 먹다 질려버리는 것들....
마트에 들러 되도록이면 다양하게
장을 봅니다.
짜장에다 카레, 미트볼에 햄버거까지.
그럭저럭 맛있네 하는 시간도 마침내
그 끝을 들키고 말 때 더는 즉석밥이
즉석밥이 아님을 실토하고야 말지요.
볶음밥이 먹고 싶었습니다.
애호박 하나에 황토색 당근도 하나
거기에다 속살 하얀 당근도 데려왔습니다.
멀뚱이 자리만 차지하던 도마에
녀석들 뉘이고서 잘근잘근 토막토막
뭐 호러무비도 아니지만 칼춤을 췄습니다.
귀차니즘이 점령한 식탁은 늘
MSG가
가득, 혀끝에서 헤벌죽 웃으면
아, 너 웃으니 나도 좋아!
하게 됩니다.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고 질리더군요.
라면이며 즉석식 요리며 더는
쳐다보기가 싫어지더군요.
지글지글 자글자글 채소를 볶는데
행복했습니다.
맛은 두 번째 이야기이고 그저 좋았습니다.
사는 것도 그랬습니다.
눈물 한 방울 들기름으로 두르고
알싸한 대파도 송송 썰어 넣어야지요.
울긋불긋 당근이야 꽃으로 피고 집니다.
달큼한 입맛이야
열 받은 양파면 충분하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행복했습니다.
"밥은 먹었니? 끼니 챙기고 다녀!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keyword
겨울비
캘리그라피
사랑
4
댓글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작가에게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이봄
보글보글 찌개가 끓고 양념같은 이야기들 곁들이는 것. 삶은 그런 거야. 글 송송 캘리 탁~~^^
팔로워
291
제안하기
팔로우
매거진의 이전글
매듭 하나 묶다
쌓이거나 스미거나
매거진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