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이거나 스미거나

거스르니 당황스러운 날

by 이봄

휑한 거리를 서성이다가

후미진 골목에 시몬의 낙엽이 쌓이고,

'우라질!' 육두문자 볼 성 사납

미움이 덕지덕지 원망으로 쌓이지.

차마 녹아들지 못하는 것들은

마르고 부서지는 경계의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품은 가시 고슴도치로 사나운데

스며 좋을 게 있다던가?

억 겁의 세월 바람이 불고 천둥은

벌거숭이로 또 그만큼 날뛰던 날에

두리뭉실 너울너울

모래알 하나하나 손깍지 풀면

스미고 젖어들겠거니...

쌓이고 스미는 것 하나가

엉뚱하게 스미고, 생뚱맞게 쌓이려는 날,

멍하니 바라만 보다 쓸데도 없는

그리움만 쌓였다.

촉촉하게 아니면 눅눅하게 짜증을 불러도

비는 비로 스며야 하고,

소복, 담뿍, 목화솜 한 아름 품에 품듯

쌓여 행복한 건 함박눈이지.

투닥투닥 똑똑 빗소리에 새벽을 깨웠다.

대한이 놀러 왔다 얼어 죽었다는 소한에

주룩주룩 겨울비 내리길래

멍때리던 나는 차마 주룩주룩 울지 못했다.


쌓이고 쌓인 내 그리움은

마침내 스밀 수 있을까?


쌓이거나 스미거나 말이 말로 다웠으면 하는

바람 하나 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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