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불시착

동체착륙이면 어떻랴...

by 이봄

하늘을 선회하던 비행기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안개에 묻힌 유도등은 제대로 활주로를 밝히지 못했지만 더는 허공을 떠돌 수는 없었다. 연료는 바닥이 났고, 기다린다고 해서 안개가 선뜻 물러날 것 같지도 않았다. 장님 코끼리 더듬듯 하더라도 결국은 랜딩기어를 내려야만 했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입술은 바짝 바짝 마르고, 손끝은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모 아니면 도' 심호흡 깊게 하고서 주사위를 던졌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붙잡게 되는 선택은 때로 도박일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게 마련이다. 대지를 박차고 창공에 오른 비행기는 결국 활주로를 찾아 랜딩기어를 내려야만 한다. 안전한 착륙이 못된다 하더라도 마냥 허공을 배회할 수는 없다. 더듬더듬 활주로를 찾고 온몸으로 내려앉아야 하는 경우라도 그렇다. 플랫폼을 떠난 기차가 다음 플랫폼을 찾아야 하듯 뒤돌아 설 수는 없다. 갈지자 회피의 시간은 주어지지만 결국은 다다라야만 끝나는 궤도에 섰다. 사는 게 그렇다. 궤도를 벗어나 탈선을 해도 그렇고, 동체로 착륙해야 하는 불시착이라도 그렇다. 오히려 안착보다는 불시착으로 만들어진 족적이 지나온 흔적일 터다.

'88 꿈나무가 굴렁쇠를 굴리며 10월의 푸른 잔디밭을 가로지를 때 까만 정장 차려입고 춤추던 사내가 열창을 했다.

"조각조각 부서진~~ 사랑의 불시착...."

꿈으로 엮은 항로야 얼마나 향기롭고 달콤할까? 계획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꿈결일까? 달달하고 향기로운 활주로에 때론 돌개바람이 불기도 하고 시야를 가리는 안개는 또 얼마나 자주 출몰하는지 헤아릴 수가 없다. 우연으로 빚어지는 사건사고는 또 어떻고?.

"내가 말이야. 그 날 술만 덜 마셨더라도.... 에휴, 술이 원수지 뭐."

웃자고 중얼거리기도 하고 어쩌면 자조 섞인 주사를 부리기도 하는 게 사랑의 애잖함이다. 활주로를 살짝 비껴나가도 인생은 이어지고, 사랑의 콩깍지는 움을 틔운다. 가끔 어디서 어떻게 살까? 궁금함이 스멀스멀 기어오를 땐

"아, 순이는 잘 살겠지?"

독백의 말로 위로하면 그만이지. 인천공항에 내리고 싶었다. 곧게 뻗은 활주로에 반짝이는 랜딩기어 내리고 싶었다. 영종도 짠물에 발이라도 담그고 싶었다. 싶었던 것들 떼 지어 달려들 때 감았던 눈을 뜬다.

"김포 국제공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항로는 변경됐고, 불시착했다. 선회비행을 하며 대기하던 비행기는 결국 기수를 돌려 김포공항에 랜딩기어를 내렸다.

2020년 1월 14일, 우연으로 만들어진 시간이다만 거부 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지만 오늘 나는 웃는다.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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