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벌잠을 자다가...

무릎이며 골반이 배겨서 깼다

by 이봄

저녁을 먹고 건너와 TV를 켰다.

습관적인 끽연으로 끼니에 대한 예의를 차리고 작은 탁자에 기대어 뉴스를 보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티비는 저 홀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분주했을 터였지만 나는 알지 못한다.

이미 가물가물 의식은 사라지고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도 없는 혼미의 꿈길을 걸었을 뿐.

"내일도 저희 jtbc 기자들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손석희 씨는 머리를 숙여 오늘도 인사를 했다.


노동은 오늘처럼 이른 잠을 불렀다.

'초벌잠'이다.

무슨 그릇을 빚는 도공도 아닌데 초벌잠이라니...

초벌구이, 테라코타. 그래서 깨어난 시간은

'도기'쯤 되려는가. 질박하고 투박한 시간.

어머니의 손맛은 장맛이라 했다던가?

장맛을 장맛으로 숙성시키는 여뭄의 그릇이 항아리요, 항아리의 여뭄이 깃든 여뭄의 시간이

초벌잠에서 깨어난 지금일지도 모르겠다.


옹골차게 뼈마디가 여물면 어른이 된다고 했다.

사내의 풍모로 덥수룩하게 수염이 돋고

팔뚝에는 힘줄이 울끈불끈 솟아나며

목울대는 도드라져 울음은 거칠고 낮았다.

깊은 동굴에 앉아 가부좌를 틀어도 좋았고, 때로는

돌덩이 하나 땅에 북박듯 앉아만 있어도 그의

그림자는 집채만한 바윗덩이로 위엄을 떠는,

소년은 뼈마디 굵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어엿한 장부로, 사내로 거듭나고 있었다.

다 뼈마디가 굵어지며 찾아오는 변화였다.


턱수염은 진작에 굵어져

언제부터 면도를 했는지도 모를 세월이 흘렀는데

다시 뼈마디가 여무려는지

마디마다 쑤시고 배겨서 잠에서 깨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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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대 앙상해 멋드러진 교각, 뼈대는 나도 앙상한데 멋드러질까는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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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꿈치며 무릎, 골반이며 갈비뼈가 맨바닥에

닿고 쓸리는 고통은 마른 자들의 전유물이다.

살집이 없어 모가 나지 않으면 모르는 고통이겠지.

오래전 아비가 그랬다. 삼복의 더위에도

늘 두툼한 요를 깔고 주무셨다.

시원한 바닥에서 굴러다니며 잠들던 아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침대의

폭신함에 기대어 잠을 청하게 됐다.

구들장의 시원한 여름밤은 애저녁에 잊었다.

관절의 아우성을 지나칠 수가 없으니 애지간히

말랐다는 얘기다. 평생 포동포동이라던지

둥글둥글이라던지 하는 말따위는

들어본 적이 없다.


나이를 먹으면 나잇살이 찐다는 말도 포기했고,

장가를 들면 살집이 오른다는 말도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옛말로 치부하면서

살았다. 그 오래된 마름이 곤한 초벌잠을 쫓는다.

어차피 단잠으로 이어질 초벌잠은 아니었다.

숙성이었으면 좋겠고, 여뭄이 있으면 더더욱 좋을 항아리같은 시간이 초벌잠 뒤엔 이어지게 마련이고, 서성이고 헤매이다 끝끝내 말 한마디

건내지 못하는 풋사랑의 불면이

따라붙을지도 모르겠다.

새벽, 귓전을 울리는 빗소리가 좋으니

그것으로 됐다.

귀뚜라미 귀뚤귀뚤 울어주니 그것도 좋다.

자다 일어나 커피도 마시고

주절주절 말들이 저 잘났다 앙다투니 그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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