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 수 없어

뭐든 함부로 일 수가 없거든

by 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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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을 앓는 화분 하나

비실비실 생기를 잃었고, 싱그러워야 할

이파리는 먹물 흩뿌리듯 거무죽죽

꼴이 사납다.

"어휴, 저거 보기 사나워! 그냥 내다 버리지?"

그가 말을 했지만 차마 버릴 수가 없다.

"조금만 더 지켜보자. 몸살이 끝나면

살아나는 줄기도 있을 거야. 그러면 잘라낼 건

잘라내고 내가 다시 정리해 볼게"

좁은 방에 넘쳐나게 많은 화분들이

창틀에 앉았고, 냉장고 옆 장식장이며

주방의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초록이 좋아 들여놓은 고무나무는 널따란 잎

의기양양하게 볕을 좇고

이름도 모르는 화초들은 찬바람 파고드는

창틀에서 겨울을 나고 있다.

저 혼자 시끄러운 텔레비전 옆에서 귀 틀어막고

넝쿨 드리운 녀석도 있다.

화분 하나 버린다 해도 난 자리가

휑하지도 않겠지만 차마 버릴 수가 없다.

보일러 돌아가는 좁은 구석엔

버리지 못한 잡동사니가 쌓였다.

쇼핑백이 그렇고 예쁘장한 유리병이 그랬다.

재활용으로 분리 배출하면 그만인 것들이

으레 그랬던 것처럼 한 자리씩 차지하고

거들먹거린다.

그래? 넌 지난봄 그가 가져온

오디술이었고, 너는 입 궁금하지 말라던

주전부리 통이었지...

주절주절 눈을 맞추고 수다를 떤다.

추억할 무엇이 매달린 것들은

바위벽에 새긴 살아있는 암각화일지도 모른다.

될 수 있으면 오래오래 추억하고 싶은

그의 숨결이다.

시들어가는 화초여도 그렇다.

혹시나 하고 기다리게 되는 숨결이 남았는데

차마 버릴 수가 없다.

버리고, 덜어내고, 지워낸 가슴에

결국 하나 남아 행복을 꿈꾸게 하는

말처럼 손길 닿은 것들 쌓고 쌓는다.

쌓여 숨 쉬는 녀석들이 입 모아 재잘거린다.

"사랑해!"

"응, 나도 당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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