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가을비 내리고

까박까박 잠에 취해 하루가 저문다

by 이봄

아침부터

부슬부슬 내리던 비 이제는 제법

야물딱지게 내린다. 소리도 투닥투닥

다듬이돌 두드리듯 정겨운데 살갗에 부딛히는

빗방울은 차갑다 못해 아리다

이렇게 또 계절은 얼굴을 바꾼다

어디 얼굴 뿐이랴

이름도 바꾸고 성질도 바꾸고 마침내

그를 추종하는 추종자의 무리까지 완벽하게

바꾸고 나면 신분세탁은 끝이 난다

어제의 여름이란 얼굴은 다만 과거지사

오늘은 밤송이 따갑게 차오르는 가을로의 변신

시간의 궤적은 태초에서 지금까지 변함 없어

올곧은데 계절의 마디가 생겨나고

사람의 입김에 붉은 녹이 슬기도 해서

여기저기 상흔으로 남았다

.

.

늦잠을 잤다

몸뚱이 뼈마디가 녹작지근 허물어져도 좋을

오늘은 내게도 휴일이어서

잠들기 전 습관으로 맞추던 알람도 맞추지

않은 아침, 부시시 눈을 떴을 때

이불은 따듯하고 발치 어디쯤에서

드르렁드르렁 아침이 자고 있었다

툭툭 발로 차 깨워도 좋을 시간이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너도 나도 늘어져 행복한 休日

이렇게 말을 잇자니 어마어마한 노동으로 쉼도

없이 달려왔노라 너스레를 떨어야만 할 것

같은데 고작 닷새의 노동으로 맞는 휴일이다

주 5일 근무를 살뜰하게 실천하는 현대인

그쯤의 끝에 쪼그려 앉아

휴일의 달콤함이 어쩌고 쉼의 평안함이

저쩌고 떠들기엔 낯짝의 표피가 두껍지 못하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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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으로 겪어내야만 했던 지난 여름이

워낙에 대단해서 닷새의 노동만으로 몸뚱이는

백기를 흔들어 저항을 포기했다 해야겠지

하루가 쌓이고 이틀이 겹치고

거기에 더해 사흘이 포개어지면

장미란의 역기가 어깨를 짓누르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쯤의 사족을 늘어 놓는다

"변명이십니다!"

설경구가 침을 튀기며 말을 뱉었다

"우리를 북으로 보내주십시오!"

간절을 넘어 사생결단의 의지를 그는

아밀라아제에 쏟아부어 역설했지

'변명이십니다!'

그래, 변명이 맞다

침을 태풍처럼 튀기며 이글이글 그래서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달려드는 설경구에게

안성기는 변명을 늘어 놓는다

이미 그는 한마리의 짐승이었으므로

다른 도리가 없었을 터였다

"가려거든 나를 쏘고 가라!"

정말 그랬을까? 그의 진정은 정말

거기에 닿아 있었을까? 나를 쏴라!

.

.

에이, 지랄

생목숨 초개처럼 버리기가 그리 쉽다던가?

변명이 맞다. 하도 오래된 이야기라서

뼈대도 가물가물 하여 헷갈리는데

살가죽까지 어찌 기억할까 만

다만, 나는 설경구 앞에 앉아 늘어 놓는

안성기의 변명을 대뇌는 오늘이겠다

지친 몸은 이러하고 저러한 연유로

피곤에 투항하여 목숨을 구걸하는 중입니다,하고...

적당히 따뜻한 침대에 누워

한 끼니 챙기고 졸고 또 다시 한 끼니 챙겨

졸다졸다 오후 3시 40분

가뜩이나 시커머죽죽한 하늘에 가을비 내리시니

다만, 졸아도 좋겠고 하루 온종일 술을 퍼도

좋겠는데 술상 마주하여 희롱할 그 누구가

없으니 오늘은 그저 까박까박

하여도 한 말 적자하니

"가을비 오시는 날, 하냥 졸아도 좋구나"

전하여라. 뉘라도 좋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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