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이라는 이름의 꿈(2)

소설가를 받아줄 나라는 없다고 했다

by 이봄

펑퍼짐 눌러앉은 여인들의 곁에는 주인을 빼다 박은 잡동사니들이 펑퍼짐 앉아 있었다. 개똥도 약으로 쓰려면 없다더니 조신한 모습이라고는 약으로 쓰려해도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조금은 긴장하고 조금은 부끄러워서 살짝 얼굴이라도 붉힌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는 애당초 그런 기대는 부질없는 바람일 뿐, 내외할 일 없는 거리에서 내외할 일 없는 얼굴들이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앉았는데 말이다. 주인을 닮은 보따리가 주인을 중심으로 앉았듯 골목을 닮은 여인들이 원래 골목의 일부였다는 듯 앉아 있었다. 칠이 벗겨진 간판 아래에는 앞니 빠진 촌부가 앉아 옥수수수염을 다듬고 있었고, 맞은편 미장원 앞에는 라면의 면발이 필시 무릎을 꿇고야 말 내공을 뿜으며 할머니가 자리를 잡았다. 텃밭이며 주변 들에서 키워낸 채소며 나물들이 둘레둘레 끌려 나와 낯을 붉히는 골목은 텃밭 하나쯤 아니면 자그마한 동산 하나쯤을 통째로 옮겨놓았다 해도 과하지 않았다.

"할머니, 이게 뭐예요?"

젊은 새댁이 신기하다는 듯한 눈으로 물었을 때 뒤적이던 손을 멈추고서 할머니가 입을 뗐다.

"아, 이거? 이걸 모른단 말야? 거 있잖여. 집 나간 며느리야 전어 새끼 한 마리 화톳불에 구우면 돌아온다잖여. 근데 그건 요놈에 비하면 암시랑토 않혀."

어떻게 이것도 모를 수 있느냐는 눈으로 치켜보며 할머니가 말을 이었다.

"서방 싫다고 달아난 년을 부르긴 뭐러 불러. 혼자 처먹고 말제. 요놈은 어찌나 맛나던지 대문을 꼬옥 닫고서 혼자 먹는다고 하잖여. 무른 서리 내리는 가을에는 뭐니 뭐니 해도 요것이 제일이제. 암 그렇고 말고... 빗장 채우고 먹는다는 아욱이여, 아욱. 어째 한 다발 줄까나? 천 원짜리 석장이여"

가을의 석양이 붉게 타오르는 골목에선 필시 총성이 울리고야 말겠구나 싶었다. OK목장의 결투, 허리춤에서 반짝이던 권총은 '탕 탕 탕' 마침내 화염을 뿜어냈을 때 석양을 등지고 섰던 가을 전어가 무릎을 꿇었다.

"이런.... 분하지만 내가 졌다, 내가 졌어!"

땅바닥에 쓰러진 전어 위에 붉은 석양이 피보다도 더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헤쳐진 보따리마다 말이 솟았고 주름진 얼굴마다 이야기가 열렸다. 무심히 걸어가던 사내가 걸음을 멈췄을 때 담장 넘어로 삐죽 튀어나온 가지에 탐스럽게 단감이 익어가고 있었다. 무게를 이기지 못한 가지가 더는 버티지 못하고 찢어질 판이었다. 주렁주렁 매달린 단감은 햇살을 닮아 붉었다. 단감을 키우고 있는 마당은 황닥불로 타고 매달린 단감은 수다로 터졌다. 솥에서 튀던 튀밥처럼 요란을 떨었지만 시끄럽거나 어지럽지 않았다. 골목을 가득 채우고도 남는 이야기들은 큰길로 몰려나와 시위했고, 담장을 넘은 수다들은 들판을 건너서 세상을 향해 달음박질쳤다.

이야기가 좋았던 남자는 코끼리처럼 커진 귀를 펄럭이면서 세상을 떠돌았다. 커진 귀는 남자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 1호였다. 세상을 떠도는 온갖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니 얼마나 소중할까. 하다못해 배고파서 칭얼대는 젖먹이의 울음까지도 놓치지 않아서 좋았다. 그렇게 사람이 꾀는 장마당이며 곰삭은 말들이 구수한 경로당도 빼놓지 않는 단골 장소였다. 장례식장이며 상가도 마찬가지여서 서울에선 ○○장례식장의 육개장이 먹을 만하다느니, 포천에 가면 장례식장 근처에 있는 XX해장국집의 시래기 해장국은 꼭 먹어줘야 한다느니 침을 튀기기도 했다. 그러다 해 걸음이면 귀동냥한 이야기들을 놓치지 않고 노트에 적었다. 말 하나라도 놓치면 큰일이라는 듯 꼼꼼하게 적었다.

" 2020년 7월 9일, 도봉구 전통시장: 젊은 새댁이 그게 뭐냐며 물었을 때 할머니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 이거? 이걸 모른단 말야? 거 있잖여. 집 나간 며느리야 전어 새끼 한 마리 화톳불에 구우면 돌아온다잖여. 근데 그건 요놈에 비하면 암시랑토 않혀...."

그렇게 낮에 들었던 이야기에 빠져있던 남자가 며칠 전에 들었던 이야기에 시선을 멈추고 한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2020년 6월 30일, 의정부시 ○○○서점: 심판관이 사내에게 물었다. 직업은? 작갑니다. 소설을 쓰지요. 작가라고요? 그렇군요. 좋습니다. 글을 쓰는 것 말고 다른 기술이나 자격증 같은 건 없나요? 아, 그게... 없.... 없습니다. 그래요? 이거 좀 곤란하겠군요. 심판관은 머리를 주억거리며 신경질적으로 메모를 했다.... 이런, 젠장. 아무런 기술도 없는 소설가라니...."

이야기는 그랬다. 어느 날 후쿠시마처럼 대한민국에서도 원전이 폭발했고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국토의 대부분이 방사능에 오염돼서 대한민국은 국가의 존립이 사실상 불가능해졌으며 살아남은 사람들은 U.N의 감독하에 난민 심사를 받는 상태라고 했다. 나라는 사라지고 사람들은 난민 수용 국가들이 내건 수용 조건에 따라 뿔뿔이 흩어지는 신세가 됐다고 했는데 노동력이 아닌 소설가를 원하는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그게 남자가 들은 지난 얘기였다.

"그럴 거야, 나라도 당장 삽질이라도 잘하는 노동자를 원하지 무슨 소설가를 원하겠어. 그것도 한국어만 할 줄 아는 작가라니...."

고개를 끄덕이던 남자는 볼펜을 집어 다시 글을 적었다.

"뭐 그렇더라도.... 독자가 사라진 세상이라고 해도 또 누가 알겠어? 방금 책으로 꾸며진 그래서 잉크 냄새가 향기로운 책 하나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지. 바라보는 사람 없다고 어디 별이 빛나는 걸 멈췄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어? 그것 봐. 별은 빛나고 바람은 설렁설렁 부는 거야. 해는 또 어떻고.... 코끼리 귀가 보물 1호인 이유가 있는 거야!"

남자는 자격증 하나 없는 작가가 마냥 부러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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