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좋던 날, 소위 맛집이란 식당을 찾았을 때 주차장은 차들로 붐볐고, 덩달아 주차를 돕는 주차도우미의 목청은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주차장을 빠져나오려는 차와 들어가려는 차가 교외의 한가로움을 지우고 포만감으로 뿌듯한 사람이 느릿느릿 자판기의 커피를 뽑아 들었다. 입에는 오물우물 이쑤시개가 물렸다. 만족한 몸짓이다. 그래? 이 정도는 돼야 맛집이지!, 하는....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입술을 댓 발 빼어 물고서 어쩔 수 없이 끌려왔을 것이고, 마지못해 걸음 한 누군가는 오가는 내내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하품만 쩍쩍 해대고 있을 터였다. 드라이브코스로 이름난 광릉 숲길에 웃음 한 보따리와 짜증 두 됫박이 뒹굴었다.
대기표를 받아 들고서 둘러보는 풍경은 유유자적 한가롭다. 골짜기를 치닫던 바람이 양지바른 곳에 다다라 숨을 돌리듯 고양이 한 마리 해바라기로 졸았다. 올망졸망 꽃을 피워낸 화단과 올망졸망 수다를 떠는 군상이 주말의 햇살처럼 눈부시게 빛났다.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봐야만 아는 게 사람인 듯 싶다. 말로야 그걸 꼭 맛을 봐야만 아냐?, 고 입을 모은다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게 사실이다. 미리 안다고 해도 모르는 것과 결과는 사뭇 다르지 않다는 게 문제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있을 때 잘해. 그러니까 잘해!"
유행가 가사에도 목청을 돋워가며 귀 따갑게 외치겠는가. 모름지기 그렇다. 곁에 있을 땐 그 소중함을 모른다. 입으로는 달달 외는 구구단처럼 뻔한 정답을 줄줄이 꿰고 있지만 맛집의 육수처럼 되직하고 깊은 맛이 베어 들었을까?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있을 때는 모른다지 않는가.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어서 후회하고 아쉬워할 수밖에 없는, 그렇지만 그렇기에 더욱 돌아볼 일이다.하루가 쌓여 만들어진 첨탑에 이지러지고 못난 벽돌 몇 장쯤이야 벌 것도 아니지 뭐. 지나가는 똥개가 짖듯 아무렇지도 않게 우물거리고야 말지만 훗날 억장이 무너지고 계절의 윤회마다 단장이 끊어지기도 한다. 그저 햇살이 고와서, 나뭇가지에 앉은 바람이 시원해서 나는 네가 보고 싶어 고백을 하듯, 담장에 앉은 햇살 한 줌에 가슴 따뜻한 기억이 있다면 행복하다 말하지 않을까.
지난날에 하지 못한 것 때문에, 했어야만 했던 말 하나 때문에 깊은 옹이가 생겼다면, 단 하루만의 삶으로 인생을 마감하는 하루살이의 인생도 과히 나쁘지 않겠다 싶다. 쌓일 기억이 없으니 패일 상처도 없고, 패인 상처가 없으니 돌아볼 아픔도 없겠다. 일일천하, 하루살이의 마음으로 오늘이 아니면 내일도 없다'는 식으로 오늘을 살아도 좋을 듯하고....
바라봄이 좋았다. 다리가 불편한 어미를 위해 아들은 접이식 의자를 펼쳐 자리를 만들었고 어미는 그 자리에 앉았다.
"어때요? 편하죠?"
"응, 편하니 좋네!"
묻는 말이나 대답의 말이 굳이 길 필요는 없었다. 구구절절, 중언부언 입만 아프지 뭐. 연밭을 빠져나온 바람은 시원했다. 주말을 맞은 산사山寺는 여느 먹자골목의 부산함을 피하지는 못했지만 불어 가는 바람은 어쩐지 뒷짐을 짓고 어슬렁 거렸고 띄엄띄엄 핀 연꽃은 대자대비 합장을 하는 것만 같았다. 북적이되 복잡하지 않았다. 시끄러웠지만 결코 귀 따갑지는 않았다. 뭉근히 지핀 군불처럼 온기가 퍼졌다. 어미의 품이 그랬듯 따뜻해서 좋은 시간이 한 조각 사진으로 남았다. 남기고 싶은 그래서 오래도록 있을 때 행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