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안녕?'이라고 불과 두어 달 전만 해도 비록 마른 멸치였지만 유유자적 대양을 넘나들었었다. 반짝이는 비늘은 달 밝은 밤에 더욱 빛났고 떼로 유영하던 몸짓은 황홀한 군무였다. 묶인 데 없는 자유는 최고의 선물이자 축복이었지만 때때로 찾아드는 외로움이 단짠의 양념으로 버무려지기도 했다. 매콤한 무침에 식초 한 방울, 새큼함을 더하고 톡 쏘는 겨자 손톱만큼 풀어내면 온 바다 갈아엎는 태풍으로 출렁거렸다. 마치 그런 것 같았다. 몸서리치게 쓴 고들빼기 한 젓가락에 구수한 된장찌개도 한 숟가락 떠 넣고 쓱쓱 비벼먹는 비빔밥에 침이 고이듯 불쑥 찾아드는 우환은 삶에 맛을 더하는 양념일지도 모른다. 싱싱하다고 해서 늘 최고의 식재료라 말할 수 없는 것은 곰삭은 발효의 맛이 있기 때문이다. 숙성된다는 것은 일종의 부패가 만든 다른 세상이듯 상처 나고 아프다고 해서 세상이 끝난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세상의 문을 여는, 몰랐던 세상으로 넘어가는 통과의례, 삶을 더욱 진중하게 치장하는 숙성의 고통이라 생각하면 될 터였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을 때마다 통증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막혔던 혈관은 시원하게 뚫었다고 했지만 말초 세포 하나하나가 되살아는 데에는 꽤나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어쩌면 망가지는데 걸린 시간만큼이나 필요할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망가진 시간이 얼마쯤 되는지를 모른다. 그러니 낫는데 필요한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저 '모르는 게 약이다!'가 최고의 현답이다 생각하기로 했다. 조바심을 낸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다. 가속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을 오가는 발이 아프다고 안달을 떤다. 그 와중에 주말을 맞은 도로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고속도로와 국도가 만나는 교차로는 병목으로 좁았고 한낮의 햇살은 가뜩이나 줄어들지 않는 길을 늘이는 것만 같았다. 고향집으로 가는 길이 이렇게 멀었구나 새삼스러웠고주차창으로 변한 도로에는 꾸역꾸역 차들이 몰려들었다. 비늘 반짝이는 멸치 떼처럼.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마당에 들어섰을 때 반가운 얼굴이 환하게 웃었다.
"삼촌? 어떻게 운전은 잘하셨어요?"
"잘했으니까 이렇게 왔죠. 하하하...."
반기는 큰형수께 싱겁게 대답을 하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만 보고 서 있는 큰형에게 말을 건넸다.
"형? 저 왔어요"
그래, 몸은 괜찮니? 형은 물었고 아, 예.... 그만저만해요. 남자는 대답했다. 다정다감하게 이러쿵저러쿵하는 말들은 다음을 위해 아껴두었다. 남자들의 대화란 게 참 멋대가리가 없다. 그저 잠시의 바라봄이면 충분했다. 아니, 충분한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충분하다고 억지를 놓았다. 코로난지 뭔지는 상관이 없네? 주말을 맞아 북적이는 캠핑장을 건너다보며 화제를 돌렸고, 주말이면 자리가 없다고 맞받았다. 정말 그랬다. 녹음 우거진 그늘마다 알록달록 텐트가 자리를 차지했고 텐트마다 몇몇의 사람들이 들먼 날 먼 분주 했다. 내가 없으면 우주 만물이 다 소용없다고 일상은 나와 무관하게 굴러가고 다만 나는 절뚝이며 마당에 들어섰다.
지난봄 조카 녀석의 결혼 소식에 들렀을 때에는 피는 봄꽃 바라보며 '다음에 또 올게요' 작별의 말도 가벼웠는데 다시 찾은 걸음은 어째 무겁고 저렸다.
"주말에 뭐하니? 큰형이 너 보고 싶다는데 한 번 내려와.... 같이 밥이나 먹자"
둘째형의 호출이 아니었어도 찾고 싶은 고향이었다. 느닷없는 입원으로 놀랐을 형과 형수님이 보고 싶기는 남자도 매 한 가지였다. 가뜩이나 마음 여린 큰형은 눈물까지 흘렸다지 않은가. 나고 자란 집이고 보면 이 흙마당을 얼마나 드나들었을까 셈하기도 어려울 터인데 안부를 묻는 걸음은 일 년에 몇 번,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되지도 않는 말로 무심히 세월이 흘렀다.
"래춘이 왔구나!"
반기시던 엄마가
"수진 아범 내려왔니?"
말씀이 바뀐 세월이 있었고, 그 어미 떠나보내던 시간도 차곡차곡 쌓인 흙마당은 여전한데 세월을 이고 진 형제들이 밍숭 밍숭 눈을 맞췄다. 인생무상, 김치 송송 썰고 국수 한 사발 삶아 시원하게 말아주시던 그 시절이 숭덩 잘려나간 자리에 아껴둔 말들만 헛헛하게 남았다.
"형? 건강한 모습으로 또 올게요. 그동안 잘 지내요"
말만 한 줄 남기고 돌아오는 길은 여전히 멀기만 했다. 길바닥 가득 떨구고 흘린 말들이 별처럼 반짝였다. 그리운 것들은 스스로 빛나게 마련이다. 마음 더해진 것들이 별이 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