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꽃

그 애잔함에 대하여...

by 이봄


메꽃이 피었다.

누구도 초대하지 않았음에도

뒷동산 소나무 가지 끝에 매달린 초승달처럼

아니면 환한 구름 한 조각 바람에 날려 펄럭이는 연이어도 그만인 모습으로 메꽃이 피었다.

공사장 한켠 자투리땅 간신히 떠받친 석축에

뿌리 내리고 조각볕 구걸했을 시간들.

지나가며 쯧쯧쯔 혀라도 차지 않았다면

다행이었을 군상들이 떼로 몰려가면

있는 듯 없는 듯 숨소리 삼키었을 너였다.

두메나 산골

한 뼘 산자락에 다람쥐와 고라니

낮과 밤을 번갈아 바시락 부시락 오갔을

빈 터에서 오비작이며 행복했을 너였는데

경천동지 땅이 울었다.

언 땅이 녹아 꽃이 피고

겨우내 묶이었던 새의 날개죽지에 붉은 피

봇물 터지듯 콸콸 소리도 요란하게

날개짓 하던 날에

산골짜기는 굴삭기 으르렁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땅이 뒤집어지고 나무는 잡초처럼

뿌리가 뽑혀 하늘로 뿌리를 뻗었다.

뻗어도 뻗어도 바삭이는 모래 한 줌 없는 하늘로.

삽질은 종일 이어지고 굉음으로 호흡하던 쇳덩이들

날을 넘기고 보름을 넘기고 몇 번의

둥근 달 뜨고 졌는지도 모르던 날에

밟히면 꿈틀거릴 작은 목숨

숨을 들이키고 내어 뱉고

화살처럼 뾰족한 이파리 허위허위 피워냈다.

.

.

.

.

마르고 터진 땅

사납게 쌓아올린 돌덩이 틈바구니에

잘린 허리 허허롭게 묻히었더니

바람은 구름을 모으고 하늘이며 산이며

기운을 모아 후두둑 후두둑 몇 방울의 비 몰아주었지.

산 목숨은 살아야 한다던 늙은 어미들

툭툭 불거진 손마디 합장하여 빌고 또 빌었는가?

잘린 허리춤에 새 살이 돋고 뜯긴 실뿌리에

땅의 온기 트이더니 이파리 돋아 줄기를

키우더니 마침내 푸른 하늘이 열리었다.

연분홍 치마 다소곳이 차려 입고

뒤엉벌이며 호랑나비

꿀벌에다 각시나방 새초롬한 눈인사에

얼굴도 붉히었다.

주름 깊은 늙은 어미들

무덤처럼 둘러 앉아 툭툭 내뱉던 말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제

어쨌거나 산 목숨은 살아야제. 그럼, 그럼

주문처럼 웅웅웅 바람으로 몰려가고

글램핑장 울긋불긋 이름을 달고

하릴없는 아이들 몰려다니며 잠자리에 메뚜기

게임하듯 놀이하듯

날개 한쪽, 다리 하나 뜯어내고 잘라내고.

리셑버튼 누르고 또 눌러도

뜯긴 날개, 잘린 다리는 다시 돋지 않을 것을...

"산 목숨은 살아야제. 그럼, 그렇고 말고"

훗날에도 메꽃이 피면

주문처럼 웅웅웅 바람은 불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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