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자리엔 그리움 고이고

그리움 그루터기엔 기다림이 앉는다

by 이봄

왁자지껄

가득 들어찼던 것들 썰물로 쓸려가고

다시 고요가 들어찼다.

강요되지 않은 침묵

여전한 풀벌레 울음소리

이따금 달려가는 자동차의 소음

길가에 흔들리는 코스모스

전조등을 따라 피었다 다문 입술

한가롭게 졸졸졸

흐르는 개울물

듣는 이 없음에도 하늘을 향해

뽑아 든 천사의 나팔

경쾌하게 뚜뚜빠빠 연주를 하면

어둠 고인 마당엔 꽃향기 가득 들어찬다.

향긋한 냄새, 향긋한 어둠

고요하고 적막해서 맡을 수 있는 시간의 향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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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나무 얇은 가지 너댓 개

잘라다가 낚싯대를 만들고

꿈틀꿈틀 징그러운 지렁이도 잡으며

부산을 떨었다

산메기(미유기) 낚시를 하자며 벗들이 모였다

평균 나이가 어떻게 될까?

갑자기 궁금했다만

구성원의 막내(?)인 내가 쉰이다

여튼, 그렇게 밤이 오기를 기다리며

계곡에 여장을 풀었다

시냇물은 시원하게 흐르고 초가을 산들거리는

숲은 맑아 청아했다

호기심 충만한 다람쥐 기웃거리며 신갈나무

숲으로 사라질 때 50대 다섯

동심으로 돌아가 박장대소 즐거웠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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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았다! 메기야, 메기!"

어둠과 물소리만 가득했던 계곡에 탄성이 울리고

드디어 낚싯줄에 매달린 산메기

꿈틀꿈틀 난리를 친다

렌턴 비춰 잡아 올린 메기를 구경하며

연신 벙글벙글 미소를 띄웠다

각자 적당한 바위에 걸터앉아 자리를 잡고

무심한 어둠을 향해 낚싯대를 드리웠다

세월을 낚아도 좋았고

메기를 낚아도 좋았다

가끔 꽁치만한 버들치도 미끼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손맛의 희생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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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탕을 끓인다 고기를 굽는다

야단법석 자리를 펴고

와인에다 맥주 소주와 막걸리까지

주종불문 국적불문의

술잔이 돌았다

되도 않는 아재개그에 화들짝 밤이 달아났다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주말을 보내는지?

돌아가 맞이하는 월요일의 아침은 또 어떨지?

잠시 잊어도 좋고, 잊지 못한다 하면

그저 슬며시 옆으로 치워내도 좋은

밤낚시와 매운탕, 술과 이야기로 밤은 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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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간 와인 반 병

홀짝이다가 담배 한 개비 피워 물고서

가득 들어찼던 자리 비워졌음을 본다

오비작오비작 비좁았던 방은

휑하여 운동장 만하고

말과 말이 섞이어 덩달아 올려졌던

텔레비전 음량을 줄였다

혼자여서 적당한 소리, 다시금 그 자리로 돌아온

그래서 마침내 소곤소곤 속삭이는

예쁜 앵커의 목소리...

좋다, 왁자지껄 소란스런 시간도 그렇고

좋다, 홀로 남아 마주하는 고요도 그렇고

길게 뻗은 발가락 저 끝

대롱대롱 매달린 외로움도 그렇다

좋구나, 좋아!

내 것이어서 좋은 것에

지난 주말의 이틀을 더해야겠다

...50, 쉰, 그 중 이틀, 밤낚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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