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댓바람부터 까악깍 까치가 울면 남자는 목을 길게 빼고 창가를 서성이고야 만다. 올 사람도 없고 편지 한 통 올 것도 아닌데 시선은 먼 산 언저리쯤에 고정되기 일쑤였다. 막연한 기다림이었고 부질없는 기대였지만 좀처럼 거둘 수가 없다. 만에 하나의 확률이라고 해도 나쁠 게 없었다. 기다림이란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데워지는 거였다. 아궁이 가득 시뻘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타오르는 장작불은 아니었다. 그저 뭉근하게 열기를 더하는 벌건 알불이었다. 질화로에서 바글바글 끓는 청국장쯤이면 좋을 찌개였고, 아랫목 이불속에 묻어둔 공깃밥이었다.
깍지 낀 손을 살며시 끌어다 외투 주머니에 넣는 따뜻함이 기다림이란 녀석의 본성일지도 몰랐다. 휴~하고 내뱉는 아쉬움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은 따뜻했다. 그래서 남자는 까치가 울지 않는 날에도 창밖을 바라보며 까치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어쩐지 까치란 놈이 울어야만 반가운 소식이 올 거 같았다. 빨간 헬멧을 질끈 눌러쓴 우체부가 편지라도 한 통 불쑥 내밀 것만 같았다. 졸음을 밀어내며 꾹꾹 눌러쓴 편지에는 가슴 울렁거리는 말들이 빼곡했을 터였다.
남자의 목은 사슴의 그것처럼 한 뼘은 자라 있었다. 밤낮없이 서성대던 창가의 바닥은 기름이라도 먹인 듯이 반짝거렸고, 시선이 머물던 먼 산의 나무들은 나목이 되었다. 연초록 이파리들이 숲을 단장하던 날에는 벚꽃이 어찌나 곱던지 남자는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초록이 짙어지던 여름날엔 매미가 우렁차게 울었고, 얼마 전에는 노랗게 단풍으로 한껏 자태를 뽐내더니만, 어치들 떼로 몰려가는 날에 이파리들 모두 떨궈버렸다. 작별의 시간이었고, 동면의 계절이었다. 너 나할 것도 없이 깨어있던 것들의 눈꺼풀이 천 근의 돌덩이로 잠을 불렀다.
꿈을 꿨다. 개구리는 개구리의 꿈을 꿨고 오소리는 깊은 굴을 파고들어 가 굴만큼이나 긴 꿈을 꾸어야만 했다. 숲의 나무들은 알몸으로 기대어 서서 웅웅웅 바람으로 울어야만 했다. 가끔 소담스레 내린 눈으로 치장을 하기도 했지만 아주 잠시만의 호사였다. 겨울이 깊고 바람이 위세를 떨칠 때 마침내 견디지 못한 것들이 쩍 쩍 요란스레 껍질이 터지기도 했다. 오래된 나무라고 해도 비껴갈 수 없는 고난이었다.
아무도 오지도 않음을 알면서도 까치가 울기만을 기다리던 새벽은 겨울이었다. 한 발의 두께로 얼었던 얼음이 비명을 토하며 갈라지는 새벽이었다. 새벽이 걷히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몇 번의 새벽이 지나야 만 아침이 오려는 지도 몰랐지만 결국은 햇살 눈부시게 열릴 터였고, 아지랑이 피는 봄은 그 끝에 매달릴 터였다. 한 뼘쯤 목이 자라고 나면 까치가 울지 않더라도 반가운 얼굴 환하게 웃겠지. 남자는 그래서 점점 길어지는 목이 슬프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