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버릴 수가 없었던 마음이 초록으로 숨을 쉬는 거야. 비좁은 창틀에서 더는 키울 수 없었던 화초들을 싹둑싹둑 잘랐을 때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에 빠지기도 했지만 결국은 다시 심기로 마음을 먹었지. 바구니 속에 든 화분도 조그만 녀석이라서 튼실한 것으로 서넛 고르고는 이파리도 적당히 속아내야만 했어. 기존에 심겨 있던 녀석은 이미 부족한 햇볕으로 고사되기 직전이어서 미안했지만 미련을 거둘 수 밖에는 없었지 뭐. 마음과는 달리 협소한 방에 기거하는 탓에 어쩔 수가 없었어. 손바닥만 한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어찌나 귀한지 몰라. 겨울이면 특히나 그 몸값이 하늘을 찌르고야 말아.
벌써 한 달은 넘은 거 같아. 뿌리도 없는 줄기를 이식한 터였지만, 날마다 꿀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돌봤더니만 생각보다도 더 빠르게 활착을 했어. 낙엽 하나 만들지 않고 뿌리를 내린 게 얼마나 대견한지 모르겠더라고. 고맙다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하고, 그렇게 씩씩한 모습으로 자랐으면 마음이 마구 샘솟기도 하고 말이지. 혼자 사는 늙다리의 마음을 알아서 그런지 초록은 더욱 생기를 띄는 것만 같아. 자고 일어나면 창가에 서서 좁다란 하늘을 애써 바라보다가 녀석들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는 거야.
"얘들아? 잘 잤니?"
그러면 쫑알쫑알 수다가 팝콘처럼 튀어. 달큼한 말들이 고소하게 사방으로 튀는 거야. 꼭 극장에 앉아 영화라도 보는 듯이.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자라는 게 곡식이라고 하잖아. 그래서 부지런한 농부의 논둑에는 잡초도 무성히 자랄 틈이 없게 마련인 거야. 시도 때도 없이 오가는 농부의 발걸음에 잡초는 짓밟혀서 기를 펼 수가 없어. 화초라고 다를 게 뭐가 있겠어. 날마다 들여다보며 물은 줄 때가 지나지 않았는지? 영양분은 모자라지나 않는지? 살피고 만져보고 하는 수밖에는 없어. 입이 있어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발이 있어서 회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오직, 키우는 사람의 관심이 녀석들에겐 목숨줄인 거야. 걸음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으니 별 수 없지 뭐. 들려줄 밖에.
쌀을 씻은 뜨물을 주면 별도의 영양제를 주지 않더라도 필요한 거름 역할을 충분히 하더라고. 전에는 마시다 남은 막걸리를 부어주기도 했었는데, 서너 평의 방에선 냄새가 나서 그럴 수가 없었지. 그래서 대체재로 선택한 게 뜨물이었는데 찌개 끓일 때만 유용한 게 아니었어. 거기다 제일 중요한 햇볕을 좇아서 바구니를 들고 볕을 졸졸 따라다니는 게 일과 중 하나야. 조그만 창에 허락된 햇볕은 하루 두어 시간에 불과해서, 엄마의 껌딱지처럼 치맛자락을 붙들게 되더라고. 하긴, 그것도 없으면 하루가 얼마나 무료하고 지겨울까 싶기도 해. 중천으로 가는 햇살의 꽁무니를 무작정 좇는 거야. 그러고 있으면 뭐랄까? 동냥젖을 얻어 먹이는 심청이 아비가 된 듯한 그런 기분이 들기도 하더라고. 쏟는 만큼 잘 자라는 녀석들을 보면 뿌듯한 마음이 들어. 그러면 됐지 뭐. 서로 의지해 건너는 세월은 그래서 외롭지만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