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부지

by 이봄

발가벗고 물장구치던 꼬마는 머리카락이 하얗게 샌 나이에도 여전합니다. 세월을 이기지 못한 겉모습엔 지난 시간이 고스란히 남았지만, 좀처럼 철들지 못하는 마음은 가슴에 하얀 손수건을 매달고서 천진난만한 웃음을 머금고 맙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듯이 나고 자란 고향은 몇 번의 탈바꿈을 거쳐 예전의 모습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으래야 찾을 수가 없고, 정겨웠던 얼굴마저 기억으로만 남은지 오래입니다.

무심히 세월의 강은 흘러 바다가 되었습니다. 옹달샘 달큼한 물은 짭조름 소금물이 됐다는데, 무당소 깊은 물로 뛰어드는 남자는 여전히 천둥벌거숭이로 행복합니다. 뒤에서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야 그 맛에 행복하라지요 뭐. 꼭 나이에 걸맞아야만 할 필요는 없습니다.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닌 인생인데, 굳이 남의 잣대에 나를 꿰어 맞출 이유도 없겠지요. 타고난 천성으로 거닐다 떠나면 그만이다 싶습니다. 강요하지 않듯 강요받고 싶지도 않습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날에도 견디지 못하고 다시 꼼지락거리게 되는 건 요런 장난이고 맙니다.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어수선해서 글을 쓸 수가 없습니다. 몇 방울의 먹물을 쏟아 붓을 적시는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요 며칠을 그렇게 보내야만 했습니다. 가슴은 먹먹하고 마음엔 회오리바람이 불었지요. 심란한 날들이라고 해서 하루 스물네 시간이 절반으로 감해지지도 않아서 더욱 고욕입니다. 손에 잡히는 것 하나 없이 보내야만 하는 하루는 그만큼 길고 지루하기만 합니다. 견디다 못해 결국은 있는 사진과 이미 썼던 글씨를 꺼내 시간을 죽이게 되네요.


걱정입니다. 걱정을 해 봐야 소용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걱정을 지울 수도 없습니다. 시끌시끌 형제가 많아서 좋았습니다. 외로울 틈도 없이 복작대던 날들이 때때로 그립기도 하고, 일 년에 고작 몇 번 모이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하지요. 형제가 많다는 건 사건사고가 많다는 말과 다르지 않아서 늦은 시간에 걸려오는 전화가 무섭기도 하고요. 그럴 나이에 접어들었다는 얘기입니다. 우환이 찾아들었습니다. 잘 지나갔으면 하는 소원을 빌었습니다. 그것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어 안타까울 뿐이고, 그래서 답답한 요즘입니다. 많은 형제가 많은 아픔을 만들지만 그래도 복닥 복닥 하던 날들이 좋았습니다. 발가벗고 미역 감던 날들이 눈에 선한데 하나 둘 떠나려 하네요. 아직 철도 들지 못한 사내가 이러고 노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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