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다는 건

by 이봄

구멍 난 문풍지로 스며든 바람 같은 걸 거야. 막아도 막아도 스며드는 바람은 올망졸망 비슷한 것들을 잔뜩 풀어놓고는 짐짓 딴청을 피우는 놈이지.

"너는 어떻게 되든 내 알 바가 없고.... 나야 뭐 이렇게 발이나 까딱거리면서 구경이나 하면 그만이지 뭐"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얄밉다고 외로움, 쓸쓸함, 허전함 등등의 침 꽤나 뱉는 똘마니들의 난장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다가, 추임새를 더하는 꼴이 볼썽사나운 거야. 계절의 쓸쓸한 풍경은 덤으로 깔고서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에 박장대소로 화답하는 모습이라니. 얼굴엔 심술이 덕지덕지 달라붙었고, 하는 행동은 멀쩡한 호박에 말뚝을 박아야 직성이 풀리는 놀부를 빼다 박았지 뭐야.


하루가 다르게 기온은 떨어지고 이파리들 우수수 떨어진 나무는 을씨년스럽게 겨울이 왔음을 얘기하는데, 어쩔 도리가 없이 들어찬 그리움을 달래게 돼. 그리운 것들을 떠올려야만 하고, 따뜻한 것들을 찾게 되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얼굴 하나 그리게도 되고, 그러다 보면 응석받이 어린애처럼 칭얼대기도 해. 들어주고 받아주면 고마운 일이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원망의 마음은 없어. 돌아앉은 계절이 장난을 치는데야 뭐라 원망의 마음을 품겠어. 모든 게 그러려니 하는 말에 젖어드는 거야.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계절에 제대로 둘러싸인 시간이야. 억지웃음을 짓고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목소리를 높여도, 좀처럼 숨길 수 없는 그리움이 빼꼬미 고개를 쳐들고야 말아. 하루를 비웠던 방에는 객이 주인행세를 하더라고.

화려한 불빛이 거리를 밝히고 요란한 노래가 귀청을 따갑게 하면, 오히려 잠들었던 것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도 해. 빛이 밝으면 그림자 더욱 짙게 드리워진다고 웃음소리가 크면 클수록 더 쪼그라드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겠지. 하필 궁상을 떠는 게 나라서 문제겠지만, 따지고 보면 꼭 나만 그런 것도 아닐 거야. 다들 비슷비슷한 마음으로 살 게 마련이라서 경중의 차이가 있을 뿐, 거기서 자유로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기도 해. 계절이 바뀌면 누구는 목감기를 앓고, 누구는 뼈마디가 쑤시는 몸살을 앓기도 하고, 때로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넘어가기도 할 거야. 발에 밟히는 게 사람이라고 그만큼 각양각색의 이야기가 꽃처럼 피는 거야 너무도 당연한 일이겠지. 그저 바람이 한바탕 가슴을 헤집고 달아나서 그런 거야. 싱숭생숭 보고픈 얼굴들이 동동 구름으로 흘러가고, 나는 먹물 적신 붓으로 말 하나를 썼을 뿐이야.


그립다는 건.... 켜켜이 쌓인 외로움이 부르는 노래야. 반주도 없는 노래는 바람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 속삭임이기도 해. 주목하지 않으면 찰나에 스칠 고백 같은 말이라서 귀 기울여 들어야만 하는 거야.

"있잖아, 나도 너 사랑해!"

들릴 듯 말 듯 부끄러운 고백의 말이라면 심장과 심장이 맞닿게 다가서서 들어야만 해. 어쩌면 쿵쾅대는 심장소리에 묻혀 듣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나쁘진 않을 거야. 그녀의 심장소리라면 백 번의 고백의 말보다 더한 떨림일 테니까 말이야.

"우리 얼굴 볼래?"

그리움 잔뜩 들러붙은 말을 건네고서 답을 기다리는 시간은 어찌나 길고 지루한지 몰라. 봄, 여름, 가을이 지나는 긴 터널의 끝에 서 있는 것만 같았어. 그래, 그러자 하는 기대와는 달리

"싫어, 나 바빠"

찬바람이라도 쌩 불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은 입술을 바짝 마르게 할 테고. 아, 쓸쓸한 계절에 낙엽만 까르르 굴러다니는 날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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