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무海霧가 밀려들면 수평선은 종적을 감췄다. 하늘과 맞닿은 경계는 무너지고 무심히 파도만 너울거렸다. 섬을 오가던 여객선은 항구에 발이 묶이고, 어선들은 포구에 남아 삼삼오오 수다를 떨었다. 정적을 깨는 바람이 골목을 내달렸지만 안개를 몰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늘어진 전깃줄과 방파제를 따라 새들은 날개를 접었다. 갈매기 무리가 방파제를 점령했고 그보다 몸집이 작은 제비들은 전깃줄에 앉아 졸았다. 개점휴업인 가게는 파리 잡기에 여념이 없었다. 눈치라곤 1도 없는 파리 몇 마리가 주인장의 속을 긁은 게 분명했다.
강제로 맞은 여유로움에 섬은 졸았다. 점잖은 파도만 방파제를 어루만졌고 잠들지 못한 고양이 서넛 돌담을 기어올랐다. 까무룩 졸던 섬이 화들짝 놀라 일어났을 때 섬과 섬을 마주하고 있던 등대가 울었다.
"뿌우웅~~뿡~"
일정한 간격을 두고 우는 소리는 새끼를 찾는 어미소의 울음처럼 들렸다. 젖을 떼지 못한 송아지야 너른 바다를 천방지축 뛰고 있을 터였다. 마라도와 가파도 사이의 좁다란 물길은 안개처럼 고요했고, 이따금 철썩대던 파도만이 바다임을 이야기했다. 사나운 물살은 온 데 간데없었다. 아우성치던 파도며 귀 따갑게 울던 갈매기도 입을 다문 시간엔 오직 등대만 서럽게 울었다.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 금일 예정되었던 모슬포로 나가는 모든 배편이 안개로 인해 취소되었습니다. 이용에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이장의 쉰 목소리가 쩌렁쩌렁 섬을 울리면 이내 어촌계의 방송이 뒤를 이었다.
"에, 어촌계장입니다. 오늘 해무로 인해 출항이 전면 금지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계원님들은 출항을 삼가시기 바랍니다"
안개가 몰려든 섬은 그래서 고요했고 손을 놓았다. 널찍한 평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이른 술판을 벌였고, 대처로 나가려던 사람들은 발만 동동 구르다가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손님맞이로 분주하던 짬뽕집은 꺼냈던 소라를 다시 수족관에 넣었다. 오분자기며 문어도 삶이 하루쯤 늘어났다. 안개가 짙어 좋은 놈들은 수족관 유리벽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이장과 어촌계장의 갈라진 목소리를 연거푸 사나흘쯤 들었을 때 선착장을 오가던 발품에 짜증이 매달렸다. 치미는 화를 삭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사람이 하는 일도 아니라서 화풀이할 곳도 없다는 게 더 속을 긁었다. 빤히 바라보이는 저편에 가기가 이렇게 힘들 줄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짙은 안개 사이로 송악산의 오름이 봉긋하게 솟아 있었고, 어렴풋이나마 오가는 차들도 보였지만 배는 뜨지 않았다. 섬이란 이래서 섬이구나 뿐, 빠져나올 방법은 없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어대는 등대의 울음에 신물이 났고, 예약과 취소를 반복하던 항공권이 부아를 치밀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