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수도 없는 앓이를 하며 살았겠지만 굳이 앓이를 통해 성장할 이유는 없다. 옹이가 많은 나무는 그닥 좋은 목재가 되지 못하듯 굳은살 많은 사람은 인상이 험악하기 십상이다. 속내야 알 수 없다. 버선 뒤집어 보여야만 알 수 있는 게 속내고 보면 더욱 그렇다. 과해서 좋을 건 없다. 물이 과하면 뿌리가 상하고, 볕이 과하면 이파리가 마르기 마련이다.
마트에 널린 매끈한 오이는 아프지 않고 자란 놈이다. 시원하고 아삭한 오이는 곧고 탱글 하다. 자고 나면 한 뼘씩 자라는 탓에 '오이 자라듯 한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성장도 빠르다. 오이는 본디 그렇게 자란다. 그렇지만 가뭄에 앓고 진딧물에 시달린 오이는 쓰고 등이 굽었다. 달팽이의 등딱지처럼 둥글게 휜다. 앓이의 결과다.
오락가락 가을비 내리면 커피 한 잔 손에 들고서 창가를 서성이면 좋겠다. 향긋한 커피 홀짝대면서 하염없이 빗줄기에 빠져들면 그거로 좋겠다. 언 발가락을 주무르고 시린 무릎을 토닥여야만 한다면 가을비는 불청객이고 만다. 없어 좋을 것들이 달려들면 짐짓, 모른 척 외면하는 게 좋다. 굳이 불러 세워 아는 척 오지랖을 마라.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려 딴청을 부릴 수 있다면 백 번이고 그럴 일이다.
악몽을 꾸다 겨우겨우 잠에서 깨면 좀처럼 잠을 청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귀신이 튀어나오고 괴물이 쫓아오던 꿈은 말 그대로 악몽이다. 삼복더위에 이불을 푹 뒤집어써야만 할 만큼의 두려움이다. 부뚜막의 고양이처럼 졸음이 밀려들어도 허벅지 꼬집어가며 잠을 쫓아내야만 했을 터다. 아파 좋을 건 하나도 없다. 악몽도 과하면 분명 한 줌의 독이 될 터다. 성장이 멈춘 날에도 '아, 성장통일 거야!' 헛소리는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