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

by 이봄


울퉁불퉁 뾰족뾰족 가시를 세우고 울그락 푸르락 분칠을 한 애벌레 계절을 건너면 허리춤에 매달린 주머니 하나 정성을 들였다. 몇 날 며칠 실을 뽑고 몇 날 며칠 실을 엮어 몸뚱이 하나 파고들 주머니 높다란 가지 끝에 매달았다. 가을을 지나야 했고 겨울을 건너야만 했다.

길고 좁다란 고치 속에 웅크리고서 견뎌야 하는 겨울은 길었고, 꾸물꾸물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기다림의 시간은 쓰고 떫었지만 봄날의 羽化는 선택이 아닌 운명인 것처럼 기다림도 마찬가지였다. 갈잎 몇 장 오물오물 씹어 몸집을 키우고 새들의 사나운 눈초리를 피해 헐레벌떡 뛰었던 날들도 결국은 겨울을 이겨낸 羽化에 이유가 있었다.

죽은 듯 고요했고 그래서 말라버린 이파리처럼 바스락거렸지만 날개를 만들었고 다리도 몇 쌍 만들었다. 암컷을 찾아 더듬거릴 더듬이는 곱게 접에 품에 안았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에도 그래서 매달린 고치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꿈틀꿈틀 애벌레는 내내 겨울을 기었다.

동짓날 밤의 긴 허리를 베어내어 서리서리 두었다가 임 오시는 날에 곱게 펴리라' 하던 佳人은 어디로 갔을까? 어느 하나가 이지러지면 또 하나는 차오르는 것처럼 이 밤이 지나면 밤은 짧아지고 낮은 한 뼘씩 몸집을 키울 터였다. 이제 막 위세를 떠는 겨울 앞에서 할 얘기는 아니다만, 낮과 밤이 자리를 바꾸듯 겨울의 품엔 이미 봄은 잉태되었다.

초록 몸뚱이 사납게 부풀리던 애벌레 한 마리 고치를 틀고 들어앉아 알록달록 화장을 하듯 허장성세 껍데기를 벗는 날에 봄꽃은 흐드러져 반기려는가. 길다던 겨울날도 손꼽아 헤아리면 몇 번이나 접고 펼까. 암컷 수컷 한데 어우러져 서로를 탐하려면 겨울은 짧고 봄날은 지척이었다.

하얀 눈 바가지로 퍼다 놓고 한 올 한 올 뜨개질로 밤은 가뜩이나 짧겠지. 고운 날개에다 달도 하나 떠서 놓고 어여쁜 꽃송이도 두엇 놓자 하면 동짓달이 대수던가.

"나는 나비 될 테야!"

어금니 바싹 깨물고서 겨울이 꼬물거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모르고 또 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