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워라

by 이봄


"아이... 엄마아... 말하지 말아요"

뭐가 그리 부끄러운지 다급히 제 어미의 말을 막아섰다. 그것도 모자라 책상에 몸을 숨기고서 들리지도 않는 말을 오물거렸다.

"아민이 네가 직접 말씀드려. 삼촌이 들으면 좋아하실 얘긴데 뭐 어때?"

부끄럽다고 숨는 아이와 그런 아이의 등을 떠미는 어미가 한바탕 소란을 떨었다. 무슨 말을 뒤춤에 숨겼는지 궁금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꿩의 머리처럼 부끄러워 몸을 숨긴 아이는 보채지 않아도 '삼촌? 그게 말이에요...' 하며 말을 꺼낼 게 분명했다. 입이 근질거리고 날갯죽지가 간지러워서 가만히 있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무슨 말인데 그래?"

무심한 듯 한 마디 던져놓고는 찌가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지만 지켜보면 그만이다. 그리 오랜 시간도 필요치 않다고 생각했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오히려 궁금증에 몸이 닳는 건 내쪽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어린 조카딸과의 밀당이었지만 이대로 질 수는 없었다. 모른 척 딴청을 피우고, 이미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진작에 잊은 것 마냥 화제를 바꿨다.

"요 며칠은 정말 봄날씨지? 조금 있으면 성미 급한 꽃나무 몇몇은 급하게 꽃봉오리를 키울지도 모르겠는걸...."

날씨가 어떻고? 이웃집 개똥이네 개똥이는 사실 개똥에는 관심도 없다는 둥 너스레를 떨었지만 아이는 끝내 요지부동 입을 떼지 않았고, 등을 떠밀던 어미가 제풀에 지쳐 입을 뗀다. 어라... 웬일이래? 아이의 입만 바라보고 있던 어른들의 참패다.

"아까 아민이가 그러는 거야? 삼촌 오늘 가신대요? 묻더라고. 그래서 그랬지. 삼촌이 약을 오늘치만 챙겨 와서 그만 가셔야 한다는구나"

여기까지 말을 하던 동생이 재밌다는 싱긋 웃으며 아이의 반응을 살피더니만 말을 이었다.

"오빠? 아민이가 뭐라는 줄 알아? 다음에 오실 때는 약을 넉넉히 챙겨 오셔서 오래 계셨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 호호호. 아민이는 삼촌이 좋대. 똑똑하고, 캘리도 잘 쓰고, 얘기도 재밌어서 삼촌이 좋다고 그랬어"

부끄러워 말도 꺼내지 못하던 아이는 정작 자리를 떠나지도 못했다. 책상 하나 사이에 두고서 귀를 쫑긋 세우고는 엄마와 삼촌을 염탐하느라 바쁘다. 없는 말을 하는지? 아니면 살을 잔뜩 붙여 뒤뚱대지는 않는지 궁금했을 테고, 부끄러움과 좋아하는 마음이 숨바꼭질을 하며 노는 거였다. 그러다 중간중간 어미의 말을 막아섰지만 이미 재롱이고 아양이다. 웃었다. 나는 웃었고 아이는 내 반응이 궁금해 눈을 반짝였다.

"삼촌이 와봐야 기껏 잔소리만 늘어놓는데 뭐가 좋다고... 하하하"

한바탕 웃었다. 아이도 웃었고 어미도 웃었다. 담장을 넘어 좋은 소리는 웃음소리와 책 읽는 소리라고 했는데 넘어 좋은 웃음소리가 소란스러웠다. 소란의 뒤에 숨긴 얼굴이 뜨겁다. 부끄럽고 민망한 건 오히려 나였다. 좋다는 말이야 당연히 좋지만 그런 말들이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은 숨어 얼굴을 붉힌다. 내가 그 짝이다. 식구끼리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말들이 있다. 어쩔 수 없이 대패를 준비해야 하는 닭살이 돋는 말들이 그렇다. 가뜩이나 닭이랑 원수인 나는 더욱 그렇다. 오죽하면 평생 닭을 먹지도 않을까?

"아민아? 다음엔 약 넉넉히 준비해서 갈게. 공부도 열심히 하고 적당히 까불까불 까불기도 하고 있어. 알겠지?"

아, 이런... 이 닭살을 어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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