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는 명확하지가 않아. 꼭 사물이나 사람과의 관계에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야. 말이란 것도 그렇고 감정이란 놈은 특히나 더 애매모호 알쏭달쏭 경계를 넘나들지. 그러니까 그 속에 갇힌 사람은 동서남북 방향을 잃고 갈팡질팡 걸음을 떼지 못하는 거야.
외롭다거나 보고 싶다거나 하는 말은 사실 하나도 문제 될 게 없어. 혼자라고 느낄 때 자연스레 따라붙는 감정이 외로움이니까. 그냥 외로운 거야. 외로우니 가슴을 채우는 얼굴 하나 떠오르는 거고. 보고 싶은 거야. 종일 입 한 번을 떼지 못했다면 반가운 거야. 사람을 만나고 눈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환한 햇살이 퍼지는 거지 뭐. 나도 모르게 얼굴 가득 미소가 번지고 웃음이 또르르 입술 주위를 뜀박질했어.
"안녕, 잘 지냈니? 보고 싶었어! 있잖아 날마다 널 생각했거든"
꾹꾹 눌렀던 말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겠지. 내가 수다스러워서 그런 건 아니야. 그만큼 가슴에 담았던 말들이 많았을 뿐이야. 아마도 그랬던 거 같아. 머리를 긁적이며 어설픈 핑계를 대려는 지도 모르겠네. 뭐면 어때? 외로움도그리움도 그 정도면 예쁜 감정이고 말이야. 거기서 한 발을 더 내딛지만 않는다면 그래. 경험상으로는 그렇더라고. 다만, 그럴 때면 꼭 후둑후둑 비가 내린다던가 아니면 미친 듯 바람이 불고는 했어. 제발 그러지 마라 부탁을 했고 한 번만 봐주라 사정도 했지만 녀석들은 귓구멍에 말뚝 하나를 꽂고 다닌다는 거야. 언제나 어깃장을 놓고는 나 몰라라 달아나면 그만이었어. 그러면 난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들썩였지. 아, 아냐. 어떻게 매 번 그랬겠니? 그럴 때도 있었다는 얘기지. 울타리를 높다랗게 쌓고는 접근하지 마시오! 경고를 하는 게 아니라서 수시로 넘나들었어.
노릇노릇 구워지는 과자는 수시로 들여다봐야만 해. 잠깐의 방심은 갈색을 지나 검게 탄 흑갈색으로 변하고 말 터라서 그래. 많은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고 높은 온도가 필요치도 않았어. 경계에 맞닿은 정점이란 건 늘 삐끗하는 순간에 극명한 대비를 만들고야 말아. 군침을 흘리거나 퉤퉤 뱉어내거나의 차이는 순간에 불과해. 눈 한 번 깜빡이는 찰나의 순간인 거야.
"오늘은 종일 뭐 했니?"
가끔 뒤적이기도 하고 들여다도 봐야만 해. 그래야만 노릇노릇 바삭한 과자를 맛볼 수 있는 거야.
뜬금없는 말이겠지만 생각을 해 봤어. 돌에 비유를 한다면 어떤 돌이 나와 비슷할까? 단단하고 딱딱한 돌은 아니겠다 싶었어. 소낙비가 몰려가고 그 끝에 반짝 햇살 부서지는 것만으로도 울고 웃는 걸 보면 마음 단단한 놈은 아니지. 오히려 푸석하고 가벼워서 돌이란 이름을 갖고도 물 위에 동동 뜨겠다 싶었어. 그러니까 화강이나 현무암 같은 단단한 돌은 아닐 거야. 모래알갱이가 뭉쳐진 사암이거나 조가비 무덤을 이룬 석회암이 어울릴 거 같아. 비바람에 닳고 빗물에 녹아 동굴 하나쯤 가슴에 품는 돌.
종이에 빈 손가락 내밀며
"앗 따가워! 나 종이에 베었어. 여기 호 하고 불어 줄래?"
호들갑을 떨며 손가락을 내밀면 넌 분명 호호~ 화들짝 놀라 화답을 하겠지. 깨알만 한 핏방울 씩씩하게 닦아내고서 상처에 붙일 반창고 하나 찾는다며 집안을 들쑤실지도 모르겠네. 그러면 상처 아물며 조금 더 매끄럽고 동그란 내가 만들어질 거야. 뾰족뾰족 튀어나온 가시를 잘라내고 갈아내는 바람인 거지. 철썩이는 파도가 되고 표면을 닦아내는 빗줄기였던 거야. 어쩌면 경사진 곳에서 또르르 구를지도 모르지만 난 동글동글 매끄러운 조약돌이고 싶어. 속으로 단단한 옹이를 품는 나무보다는 모난 곳 깎아내고 갈아 동글동글 매끄러운 돌이 됐으면 좋겠어. 바삭하고 고소한 과자처럼 노릇노릇 구워진 조약돌 하나 내가 될 수 있을까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