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하나를 쓰고 달력에다 동그라미를 그려 넣었어. 그것도 빨간 색연필로 눈에 띄게 동그라미를 그리거나 아니면 삐죽 입술을 내밀 듯 가위표를 치는 거야. 일종의 숙제검사 같은 거고 작심삼일을 완성하는 채찍이기도 해. 마음을 먹으면 못해도 사흘은 간다고 했으니 거기에다 하루씩, 하루씩 실천을 더하는 거지 뭐. 그게 마음이 편해.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으니까 오히려 달력엔 이가 빠지지 않은 동그라미가 가득 들어차게 되더라고. 올망졸망 어깨를 맞대고 수다를 떨고 있는 달걀판이 따로 없었어. 귀 기울여 가만히 들어봐요.
"재잘재잘 삐약삐약!"
저절로 웃음이 새어 나와. 그게 좋아서 색연필 종이 껍데기 빙빙 돌려 까놓고서 빙긋 웃게 돼.
거창하게 글이라 말하기는 좀 부끄러워서 두꺼운 표지에다 이렇게 쓰는 거야.
"閑中日記!"
公의 일기를 흉내 내는 것만 같아서 죄송한 마음이 없지는 않지만 어차피 일기란 게 하루를 기록하는 것이니 일반 명사에 불과하기도 해. 말머리에 閑中이야 하릴없는 者의 하루다 보니 당연한 것일 테고 말이야.
일기처럼 날마다 글 하나씩 써야지' 했던 다짐은 꽤나 길게 이어지고 있어. 지난해에 마음먹은 일이니 벌써 해를 넘겼어. 오늘이 겨우 해가 바뀌고 이틀째 날인데 모르는 사람이야 엄청 오랜 시간이 지난 거 같은 착각을 다 불러일으키고 나쁘지 않아.
온갖 이유와 갖은 핑계를 불러다 쪼르르 세워놓고서 일장 훈시를 늘어놓는 거지 뭐. 날씨가 어떻느니, 세상 돌아가는 꼴이 개차반이라느니 침을 튀겨가며 떠들다가 빼먹지 말아야 할 말 하나를 덧붙여만 해.
뭐랄까? 화룡점정이고 부처님의 개안식 같은 거 말이야.
"에에, 그러니까 끝으로 드릴 말씀은 ~~"
교장선생 님의 훈아의 말은 끝이 없었어. 나의 글이란 것도 그럴 거야. 알맹이 없는 변죽이 세월을 좀 먹는 격일테지만 그게 나만의 세월을 낚는 낚시인 걸 어쩌겠어.
결국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사진첩에서 사진 한 장을 고르고 이렇게 넋두리 같은 말들을 주절거리게 돼. 낚싯바늘도 없는 빈 줄에 대롱대롱 코를 꿴 말들이 수다스러워. 어쩌겠어. 난 그게 좋아서 오늘도 빨간펜 손에 쥐고서 달력을 넘기고 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