펩시와 코카

by 이봄


흙먼지 뽀얗게 날리는 도로를 경계 삼아 분화구 내에 자리한 넓은 분지는 동서로 나뉘어 있었다. 분지의 서쪽엔 낮은 구릉을 따라 바닥을 드러낸 강줄기가 있었고 강줄기를 중심으로 마을 몇 개가 올망졸망 이마를 맞대고 있었다. 풀포기 하나 없는 하얀 모래밭이 길게 이어진 강바닥엔 제법 키가 큰 아까시나무가 듬성듬성 숲을 만들었다. 한낮의 폭염을 피해 동물들은 그늘을 찾았고 아까시나무 그늘은 보기보다 훌륭한 피난처였다. 스프링복이나 임팔라 같은 작은 초식동물들이 가시덤불을 울타리 삼아 더위를 피했고 표범이나 치타는 높은 나뭇가지에 널브러져 낮잠에 빠져들었다. 건기의 한낮은 살아남는 게 우선이었다. 배를 곯는 것보다 위험한 햇살이 정수리 위에서 쏟아지고 있었다.

계절이 따로 없는 분지엔 비가 내리는 우기와 흙먼지 날리는 건기 둘이 번갈아가며 계절을 만들었다.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은 우기였다. 하늘 가득 먹구름이 몰려들고 세상 모든 것을 쪼개고 불태우려는 듯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었다. 새끼를 가진 암컷들은 일제히 우기에 맞춰 새끼를 낳았다. 바짝 마른 초원에 비가 내리면 숨죽였던 생명은 고개를 들었고 기지개를 켰다. 풀에 의지한 초식동물들은 살을 찌웠고 새끼를 낳았다. 초식동물에 기댄 육식동물은 임팔라의 엉덩이에 살이 오르면 새끼를 낳고 사냥을 했다.

누를 따라 분지를 떠났던 사자가 비구름을 따라 분지로 돌아왔다. 어미를 따라잡기에 버거웠던 새끼 사자들은 제법 맹수의 얼굴로 이빨을 드러냈고 작은 동물들은 새끼의 등장만으로도 꽁무니를 빼기에 바빴다. 아까시나무가 바람에 흔들렸고 초원은 사자의 등장에 술렁였다. 왕의 귀환이었다. 초원은 떠났던 사자의 귀환에 따라 새롭게 영역을 나눴고 삶과 죽음의 골짜기를 넘나들었다.

먼지를 잔뜩 매달고 트럭 한 대가 초원을 가로질렀다. 애써 길을 감시하지 않더라도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트럭은 워낙에 소란스러웠다. 잔뜩 실린 짐은 서로 부딪혀 시끄러웠고 길을 따라 솟아오르는 먼지는 마치 구름과도 같았다. 눈을 피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분지의 서쪽에 있는 마을이 트럭의 등장에 덩달아 소란스러워졌고 동쪽 산기슭도 마찬가지였다. 옷가지며 냄비쪼가리 하나를 구하려면 만물트럭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옥수수 가루며 밀가루 한 됫박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으로 나가고 세상이 들어오는 유일한 통로는 분지를 가로지르는 도로가 유일했다.

덜컹덜컹 요란을 떨던 트럭이 멈춘 건 허름한 움막 앞이었다. 움막은 조그만 마당을 끼고 있고 비를 피할 만큼의 지붕을 이고 있었다. 비 소식에 이사를 가는 개미처럼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유충을 입에 문 개미가 줄줄이 꼬리를 물듯 보따리를 머리에 인 아낙들이 까맣게 이어졌다. 버려졌던 움막은 트럭의 등장으로 삽시간에 북적였다. 동과 서로 나뉘어 경계를 나누던 사람들은 움막의 마당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머리에 이고 온 짐승의 가죽이며 부족의 공예품을 정확히 마당의 반쪽에 내려놓았다.

만날 일이 없었다. 경계를 넘는다는 건 부족 간의 전쟁을 의미하는 거여서 짐승을 쫓다가도 경계를 넘는 짐승은 더는 쫓지 않았다. 오래된 암묵적 약속이었고 그래서 길은 부족의 경계를 따라 분지를 양분하고 지나갔다.

그게 문제였다. 동쪽 산기슭에 사는 펩시족은 서쪽의 코카족에 비해 늘 열세였다. 사냥을 하거나 농사를 짓는 데에도 펩시족의 땅은 황폐했고 거칠었다. 사냥을 하기에도 동쪽 산기슭은 적합하지 않았다. 물길을 품지 못한 산은 짐승을 키우지 못했다. 분지를 남북으로 흐르는 물길은 서쪽의 코카족 마을을 관통하며 흘렀기 때문에 땅은 조금 더 비옥했고 물을 따라 짐승들이 꼬였다. 우기에 맞춰 짐승들이 새끼를 낳듯 건천에 물이 흐르면 코카족의 아낙들은 애를 낳았다.

두 부족은 지키기 위해 창을 들었고 빼앗기 위해 활을 움켜쥐었다. 호시탐탐 노리는 자의 눈은 사나웠고 어둠을 밝혀야 하는 자는 벌겋게 충혈됐다. 그나마 세대를 거듭된 부족의 반목은 트럭이 멈추는 마당에서 누그러들었다. 외부로 뚫린 길에서 사람들은 들었던 창을 내려놓았고 초원으로 들어오는 길에서 화살을 꺾었다. 여전히 동쪽의 펩시족은 코카족에 비해 열악한 환경과 싸웠고 호시탐탐 물길을 염탐했지만 경계선을 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런가 눈밭을 뒹구는 푸른 깡통이 애처로웠다. 어느 먼 나라의 초원에는 창과 활을 든 부족이 여전히 충혈된 눈으로 서로를 쏘아보고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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