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슬보슬 이라거나 추적추적이라거나 얌전하고 쓸쓸한 말 따위는 개에게나 줘라! 엄포를 놓듯 주룩주룩 겨울비 오시었다. 지레 꼬리를 말고 머리를 조아렸다. 알량한 자존심 하나 건지려다 치도곤을 당할 터라서 납작 엎드려 읍소하였다.
"오시었군요? 오실 때가 아닌 지라 당황스럽사오나 이왕지사 오시었으니 안으로 드시지요!"
설설 기었다. 솥뚜껑 같은 비가 오신다는 말에 몸 둘 바를 모르다가 자라란 놈만 붙들고 육두문자를 날렸다. 애꿎다 구시렁대려거든 오시는 걸음 가로막고서 이러지 마시라 마음이나 돌리던가. 그게 아니라면 내민 입술 점잖게 물리어라.
허 씨 성의 수라는 녀석 몰골이야 그 아비를 보면 어림짐작 어렵지도 않다 하고 그 걸친 옷가지야 넝마쪼가리도 아까워라, 아까워라 탄식했다. 오매! 저놈의 화상은 또 뭔 일인고. 무당 놈의 손바닥이 어찌나 널따란지 그 바닥에 엉덩짝 붙이고서 굿판을 거하게도 펼쳐놓고 급기야 길게 느린 수염자락에 매달려 그네라도 타는 겐지 희뜩희뜩 어지럽다. 허수란 놈의 아비 놈은 남의 옷 볼썽사납게 걸치더니 고놈이나 고놈이나 하는 꼴이 마땅찮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쉬이 잠들지 못한 것은 주룩주룩 염치없는 빗소리 때문이다. 오들오들 떨다 말고 펑펑 내리는 눈 바라보며 뜨거운 커피 한 잔 호호 불며 마셔도 시원치 않을 밤에 장대비가 쏟아졌다. 어찌나 청승맞고 어찌나 요상한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염치도 없고 낯짝도 없는 일이 비일비재 난장을 치니 잠은 멀리 달아나고 새벽은 길기만 하다.
일월의 복판이면 영하 20도쯤은 별것도 아니라는 듯 곤두박질쳐야 할 고향에도 새벽을 깨워 비가 내렸다. 이름이 무색하게 겨울은 꼬리를 말았다. 철을 잊은 꽃나무는 화들짝 놀라 꽃눈을 키웠고 지붕에 쌓인 눈은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녹아내렸다. 물색없는 겨울에 벌거벗은 임금님이 활개를 친다. 미쳤다. 날씨도 그렇고 그보다 더한 인간사가 함께 미쳐 날뛴다. 그러니 때때로 곤죽이 되는 필부의 마음이야 탓할 일이 없다.
불어 가던 바람 한 줄기도 댕강댕강 부러져야 할 계절에 엿가락처럼 찐득한 바람이 불었다. 털어냈으면 좋을 것들이 떼로 몰려와 온몸에 들러붙었다. 아, 싱숭생숭 가슴은 울렁거리고 머리는 어지럽다. 그렇다고 구들장 짊어지는 게 고작인 내가 뭘 할까. 하늘만 무너지지 않기를 소원할 밖에 무엇을 하랴. 언제였던가. 꾸덕꾸덕 언 엿 한 판 손바닥에 올려놓고 주먹으로 깨 먹던 그 겨울이 그립다. 밀가루 항아리에 장아찌처럼 박아둔 엿이 눈에 삼삼한 새벽, 커피포트의 물이 요란하게 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