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때부터 썼음직 한 양은 냄비에 무와 대파 숭덩숭덩 썰어 넣고서 토막 낸 동태 서너 마리 얼큰하게 끓여내면 마음 헛헛한 사내 몇 명 탁자를 중심으로 빙 둘러 자리를 잡았다. 열린 문틈으로 인쇄기 돌아가는 소리 점점 데시벨을 높이면 해는 빌딩 모서리에 걸렸다. 부지런히 하루를 마무리하려는 배달 오토바이 가뜩이나 시끄러운 골목에 왁자지껄 발을 걸쳤다. 주머니 깊숙이 양손을 찔러 넣고는 퇴근을 서두르는 무리가 역으로 이어진 골목을 종종거렸다. 허연 입김을 내뿜던 사내는 출입문을 닫고 출발하려는 버스의 꽁무니를 두드리며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지나가는 사람들 힐끔힐끔 바라보며 어슬렁거릴 여유는 없었다. 찬바람이 옷섶을 파고들면 걸음은 저절로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잰걸음으로 가득 찬 거리는 그래서 바빴고 어지러웠다. 여유가 없었다. 각자의 정해진 목적지에 닿기 위해 촌각을 다퉜고 설령, 어깨가 부딪힌다고 해도 한 번 속도가 붙은 발걸음은 좀처럼 멈출 수가 없었다. 뒤를 돌아보며 상대를 쏘아본다거나 가벼운 목례로 미안함을 전하지도 않았다. 겨울이 만든 암묵적 합의라도 있었다는 듯 시선은 바닥에 꽂은 채 가던 길을 서둘렀을 뿐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대로변이며 골목을 따질 것도 없이 길에서는 바스락바스락 잔뜩 마른 갈잎이 부서졌다. 차가운 침묵이 흘렀고 침묵하는 사람들을 아가리 가득 삼킨 버스가 시끄럽게 도로를 질주했다. 위장 가득 삼켜진 물고기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소화가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거 같았다. 버스가 요동칠 때마다 위장 속 물고기가 출렁였다. 이따금 고막을 찢을 듯이 경적을 울리며 커다란 버스가 지나치면 그 사이에 낀 승용차들이 몸을 잔뜩 웅크리고서 입을 꾹 다문 채 깜빡이를 깜박였다.
침묵과 아우성이 교묘하게 뒤섞여 겨울을 만들었다. 이 계절이 아니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진풍경이었다.
한바탕 썰물처럼 사람들이 빠져나가면 골목은 한갓지고 여유로웠다. 가게마다 하나 둘 불을 밝히고 높다랗게 매달린 보안등이 켜지면 불빛 뒤로 달아난 어둠과 취기가 오른 사람이 술래잡기를 했다. 그림자 뒤에 숨었다가 비척비척 나타나서는 박장대소 웃음을 풀어놓았다. 누구는 흥얼흥얼 노래를 불러 취기를 더했다. 복잡하게 엉킨 인터넷 선이며 전깃줄이 정수리 위에서 소곤거렸고 나 잘났다고 동네방네 자랑을 하는 간판들이 아양을 떨고 있었다. 온갖 방송국이 국민의 흥을 돋우려고 안간힘을 쓰던 때였다. 에스비에스 노래방을 필두로 엠비시 노래방이 손짓을 했다. 멀찌감치 떨어진 건물의 2층에는 케이비에스 노래방이 육감적인 몸매의 아낙을 내세워 취객을 불러 세웠다. 흥겹게 불어 가는 바람에 불빛이 흔들렸고 멀쩡하던 골목길이 벌떡 일어서기도 했다. 마이크를 교태스럽게 잡은 여인네가 윙크를 하면 비척거리던 사내들은 차마 뿌리지지 못하고 계단을 오르고 말았다.
모 경제지 뒤편으로 이어진 골목은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미로를 만들고 있었다. 크고 작은 인쇄소가 이마를 맞대고 있었고 인쇄에 관련된 지업사며 제본공장 등등의 것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때 되면 먹어야 했고 먹었으니 커피 한 잔의 여유도 놓칠 수 없었다. 어둠이 내리면 소주 한 병이 그리웠고 가끔은 목에 낀 떼도 벗겨야 했다.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처럼 충무로만의 단단한 사슬이 골목골목으로 이어져 묶여 있었다.
피 끓는 청춘의 잰걸음으로 들어간 골목을 중년이 다 돼서 하늘 한 번 올려다보며 나왔다. 청춘의 그때나 중년의 하늘은 여전히 파랬다. 골목 중간중간에 하나씩 들어선 빌딩이 세월이 흘렀음을 웅변하고 있을 뿐 눈에 익은 골목도 여전했다. 볼링장 건물이 간판을 바꿔 달고는 손바닥보다 큰 노가리를 팔고 있다는 정도의 변화가 골목에서는 커다란 뉴스였다.
중년의 사내가 골목을 막 벗어나고 있을 때 바라본 골목엔 남겨두고 나오는 사내의 청춘이 쓸쓸히 손을 흔들었다. 그에게 사내도 잘 있으라고 손을 흔들었다. 엠비시 노래방이나 들렀다 갈까. 목청 터져라 노래를 부르고 싶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