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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비늘

by 이봄


물비늘 곱게 반짝이던 여름의 막바지에 개천가에 앉아 시간을 죽였다. 시간은 금이라 했지만 정작 시간을 금으로 대접하는 순간은 얼마나 될까? 째깍대는 초침 소리와 함께 지금은 이미 과거가 되고야 마는 그 피 같은 시간을 기꺼이 나는 죽이고야 말았다. 죽인 시간만큼 내 목숨줄도 짧아졌을 테고 말이다. 아, 그렇다고 아등바등 쪼개 아낀다고 해서 그만큼 목숨줄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지만, 뜻 없이 흘려보내지 말라는 경계의 말이라는 걸 모르지도 않지만 시간은 서 푼어치의 푸대접을 받는다. 깨진 바가지에서 물이 줄줄 새어나듯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는 시간은 어쩔 수 없었다. 하루 스물네 시간 헛되지 않고 옹골지게 사는 사람이 어디 몇이나 될까 괜한 시비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바람은 살랑거려 시원했다. 말복을 훌쩍 넘긴 터여서 마른바람이 불었고 한낮의 햇살은 그늘까지 좇아오는 무모함을 잃었다. 어디든 끈덕지게 따라붙어 끈적대던 바람은 진작에 자취를 감췄고 저기 멀찌감치 달아난 한낮의 햇살도 예전의 거들먹대던 몸짓을 버렸다. 계절이 이름을 갈아타고 있었다. 계절이란 것도 오고 감이 명확지 않아서 외나무다리에서 마주친 원수처럼 서로의 멱살을 잡고 난리를 치는 통에 눈살을 찌푸리고는 했다.

영원한 것은 없다지 않았나?

서슬 퍼런 영감님의 헛기침도 칠성판에 눕고 나면 헛바람에 지나지 않았다. 당대 떠르르 이름을 떨치는 명필의 일필휘지로 비문을 새기면 뭣하고, 가는 길에 수 백 수 천의 만장이 나부끼면 뭣할까? 오늘이 가면 다 끝인 게다. 흔들리는 요령소리 앞세우면 먼지로 흩어질 삶이다. 인생도 그렇고 우주만물도 그렇다. 내일을 기약할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도 없다. 그러니 오늘의 시간 한 조각은 내일에서 빌어온 몇 곱이나 큰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늘 행복해야 하는 이유는 열 손가락을 다 접어도 부족할 만큼 많다. 오늘이 어쩌면 삶의 마지막 조각일지도 모르는데 부는 바람에 마음 빼앗기고, 눈부신 햇살에 정신 빼앗기게 된다. 누구는 몇 평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는 말에 속을 끓였고, 외제차 번쩍이며 나타난 친구에게 굽실대는 나를 볼까 싶어서 가슴이 서늘해지기도 했다. 그러는 중에도 손아귀 사이로 시간이 도망쳤다. 달아나는 시간은 두고 온 것들에 한 줌의 미련도 없어서 뒤를 돌아보는 일은 없었다. 뜻도 없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생각에 빠져 해가 저물 때에도 시간은 물처럼 흘렀다.

펼쳐 든 책 속에 들어앉은 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써 내려간 말들이었을 테지만 뻔한 말이었다. 세상 명언이란 게 사실 그렇다. 말처럼 쉬운 게 없다고 세 치 혀로 쏟아내는 말은 쉽다. 툭 입 밖으로 뱉어내고는 나 몰라라 딴청을 피우는 건 어려울 게 없다. 말에 뒤따르는 실천의 어려움이 문제일 뿐이다. 물론 이렇다, 저렇다 방법을 이야기했으면 실천이야 화자의 몫은 아니다. 결국 실천은 이야기를 듣는 청중의 몫이었고 글을 읽은 독자의 몫이었다.

아, 이런.... 결국은 또 실천하지 못하는 나의 게으름과 나약한 의지를 감싸기 위한 핑계에 맞닥뜨리고야 만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더니 내가 꼭 그 짝이다. 애써 외면하고 싶은 마음은 와락 변명을 앞세워 끌어안고서 그나마 잘 됐으면 좋겠다 조언하는 말은 입에 쓰다고 고래고래 삿대질을 하는 꼴이다. 머리카락이 다 빠지도록 지혜를 쥐어짠 작가는 얼마나 허망하고 열불이 날까? 뻔한 이야기로 매도된 말이 접시물에 뛰어들 판이다. 이미 성미 급한 녀석들은 물에 뛰어들어 허우적대고 있었다. 머리를 저었다. 개똥 같은 생각을 떨어내려 머리를 저었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좋았고 물결마다 반짝이는 물비늘은 또 얼마나 좋던지 책장을 덮었다. 뻔한 이야기도 멀찍이 쫓아버렸다. 울그락 푸르락 달려들던 작가 나부랭이도 주먹다짐으로 내쳤다. 물비늘 반짝이는 시간엔 너나 나나 서 푼어치 나부랭이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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