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하고 소리 내어 부러져도 좋을 순간이 언제일지는 모른다. 다만, 물푸레나무처럼 질기게 붙들고 싶지는 않다. 머리에 이고 있는 눈의 무게를 더는 감당하지 못한다면, 그런 순간이 된다면 순간에 부러져 푸르게 갔으면 그것도 좋겠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오래오래 살아야만 꼭 행복한 건 아닐 테니까....
사진 한 장 모니터에 띄워 놓고서 낙서처럼 끄적인 글 몇 줄 곱씹어 삼켰다. 2016년 3월 초순의 감정은 이랬었구나 하게 된다. 산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야 늘 붙들고 있는 거니까 뭐 특별할 것도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딱하고 부러졌으면 하는 마음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아니, 대부분은 그런 생각으로 살지 않을까 싶지만 그래도 일부는 오래오래 매달리고자 하는 마음이 클 수도 있겠다. 늘 하는 말이지만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늙은 소나무 하나 그리고 싶었다. 등은 굽고 가지가 죽어 듬성듬성 하늘을 열어 둔 나무면 더욱 좋겠다 싶었는지 죽은 가지가 앙상했다. 간밤에는 제법 눈도 내렸는지 가지마다 솔잎마다 하얀 눈을 이고 있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솔잎을 파고들어 바람도 불었을 게 분명했다. 쏴아 바람은 요란해서 등골이 서늘했을지도 모른다. 덜컹대는 문틈으로 황소 몇 마리 들어와 휘휘 방을 휘저었을까. 겨울은 그래서 외로웠을 테고 쓸쓸했겠지. 모니터에 삐딱하게 서있는 소나무는 외로웠다. 외로움 덕지덕지 들러붙은 꼴이 처량했다. 그런 소나무 억지스럽게 그려놓고서 덩달아 나도 청승을 떨었을 터다. 소주잔 기울이며 탄식의 말을 뱉었을지도 모른다. 칠 년의 세월은 세세한 감정까지 남겨놓지는 않았다. 대충의 얼개는 멀쩡하지만 기억의 편린들은 모두 체에 걸리지 않고 빠져나갔다. 그것도 세월이었다.
두툼하게 쌓인 종이를 들고 나와 아궁이에 불을 붙였다. 새벽의 고요와 비 오는 날의 젖은 풀잎이 파르르 떨었다. 꽃잎은 스스로 떨어져 불꽃 속으로 날아들었다. 끝끝내 살아남아야지 마음을 다진 말들은 옷섶에 매달려 발버둥 쳤지만 부지깽이는 피할 수 없었다. 기어 나오려는 것들을 매몰차게 밀어 넣었다. 시커멓게 그을음이 들러붙은 아궁이는 흡사 괴수의 아가리처럼 흉악스러웠지만, 그 속에서 노랗게 일렁이는 불꽃은 더욱 선명했고 아름다웠다. 부지깽이 찔러가며 쌓인 이야기들을 태웠다. 어쭙잖은 글씨와 그림들이라서 아깝다거나 하는 마음은 애초에 없었다. 춤을 추듯 타오르는 불꽃은 따뜻했고 황홀해서 한참을 바라봤을 뿐이다. 삼월의 바람은 쌀쌀해서 불에 바짝 다가앉아 따뜻한 온기를 즐겼다. 불을 쬐며 손바닥을 비볐을 때의 보송한 느낌이 찌르르 심장까지 도달했고 나는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게 전부였다.
칠 년 전 그때는 그랬는데 오늘 남겨진 사진 한 장 바라보다가 드는 이 아쉬움은 뭘까. 그냥 두었으면 좋았을 것을 괜한 짓을 했구나 하게 된다. 그때는 분명 거추장스러웠을 텐데 오늘은 못내 아쉽다. 어디 지나고 나서 후회하게 되는 것과 순간이 하나 둘이겠냐만 늙은 소나무 하나가 아쉬운 마음을 불러 세웠다. 그나마 사진 한 장 남겼으니 다행이다. 싸라기 눈은 종일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하더니 질긴 몸짓에 몸집을 키웠다. 제법 굵은 눈발이다. 끝내 살아남은 것들의 뿌듯함이 저러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