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겁지겁 씹어 삼킨 꼴은 생각처럼 빠르게 소화되지 않아서 소는 시간을 쪼개 되새김질을 했다. 곱씹어 잘게 부서지고서야 비로소 소화가 되었다. 느긋하게 배를 깔고 치르는 날마다의 의식이었다.
반추였다. 그때의 기억을 소환하고서 껌을 씹듯 겨우 남은 단물을 짜내고 있었다. 애써 날짜를 세고 기억을 환기시킬 일은 없다. 저장된 세월은 날짜별로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같은 날짜 같은 계절을 맞이하면 자동으로 깨어나게 얼개를 짜놓아서 알람처럼 알아서 울었다.
그때의 오늘은 비가 내렸고 여정은 끝을 맺고 있었다. 한 달 남짓 길을 걸었다. 낯선 길과 그 길에서의 만남도 모두 그랬다. 까맣고, 하얗고, 누런 얼굴과 꼬불꼬불, 말랑말랑, 뻣뻣한 말들이 뒤섞여 묘한 동질감을 만들고 있었다. 뭐든 처음은 다 낯설게 마련이지만 눈을 맞추고 짧은 인사만으로도 구면이 되고 길동무가 되었다. 하나를 향해 걷는 걸음이라서 긴 이야기도 필요치 않았다. 길의 끝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목적지는 하나였다. 스페인의 서쪽 끝, 거기에 고도 산티아고가 있었고 대성당의 높다란 첨탑이 기다리고 있었다.
더는 노란 화살표를 따라가지 않아도 좋은 아침을 맞았고, 그만큼 여유롭게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호사를 누린다. 보슬비는 소리도 없이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고, 일정을 끝낸 순례자는 페북창을 들여다보며 마음을 적셔도 좋았다. 한껏 게으름을 피워 그동안의 여정에 보상을 주었다. 주섬주섬 판초우의에 몸을 구겨 넣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질척이는 운동화를 신지 않아도 된다는 건 희열이었다. 마르지 않은 옷가지와 마를 틈도 없이 내리는 빗줄기는 고문이었으니까. 우의를 팽개치고서 따끈한 라디에이터에 몸을 바짝 붙이고는 마냥 졸고 싶었다.
때 되면 알아서 배꼽시계는 요란을 떤다. 주인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꼬르륵꼬르륵 난리를 쳤다. 못 이기는 척 그래, 알았다. 뭐든 너의 허기진 심사를 달래어 주마. 그래도 조금만 더 기다려야겠다. 조금은 느긋하게 천천히 가자꾸나. 물집 잡힌 발바닥은 쓰리고 멍든 어깨는 무너지기 일 보 직전이다. 그러니 너무 보채지는 마라. 마른 빵조각이라도 찾아 대령할 터다. 뱃가죽과 등가죽이 조우하는 불상사는 초래치 않으리니....
힘들게 만든 여행이었다. 한 달이 훌쩍 넘는 시간을 만들어야 했고 그만큼의 여비도 마련해야만 했다. 그러니 길에서의 하루는 금쪽같은 시간이었다. 언제고 다시 올 수 있는 길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랴. 오늘은 그 시간을 허공에 마구 뿌려도 좋았다. 중동의 어느 대 부호처럼 금쪽을 뿌렸다. 흐르겠거든 흘러도 좋았다. 굳이 어디까지 가야만 한다는 조바심도 필요 없는 아침이다. 목까지 담요 끌어 덮고서 굼벵이 트위스트로 하루를 보내면 그만이었다.
"시간아? 너는 가고 나는 예서 꼼지락꼼지락 바디랭귀지로 시간을 죽이려느니...."
생각을 하는 순간에 이미 입가에 번지는 미소는 도저히 숨길 수가 없었다. 꿈인가 싶었다.
계획했던 것을 이루었을 때의 뿌듯함과 고됐던 길에서의 해방감을 느긋하게 즐기고 있었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작별의 아쉬움까지 어깨동무를 하고 빙빙 돌았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왔으면 싶었다. 힘들고 고됐다 투정을 부리다가도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나쁘지는 않았나 보다. 길이란 그런 거였다. 하나의 길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길은 시작되었다. 짊어진 배낭을 벗는다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짓눌린 어깨를 잠시 쉬게 하고 떨어진 것들을 챙기는 시간에 불과하다. 계획은 다시 세워야만 하고 일정은 촘촘하게 짜는 거였다.
잠시 방관자 되어 경기에 몰두하고 있는 너를 위해 오늘은 박수를 친다. 손바닥이 얼얼하게 박수를 친다는 것도 다시 경기에 뛰어들 순간을 위한 채비의 시간이다. 채우고 동여맨 운동화에 힘이 실리면 언제고 나는 선수가 될 터였고 그러면 너는 나를 위해 박수를 쳐다오. 그것도 손바닥이 얼얼하게. 다만, 오늘은 객석에 앉아 울대 세워 열창하는 너의 노래에 박수를 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