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가지마다 올망졸망 빗방울 매달려 꽃망울과 키재기에 여념이 없다. 처마에 기댄 나는 한가로움에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고, 봄이라는 꼬리표 단 놈들은 가랑이가 찢어져라 분주했다.
봄이란 늘 그랬다. 둔덕에 앉아 바라보는 것에는 게으름이 잔뜩 매달렸지만 풍경에 스민 것들은 고단한 하루였다. 보는 것과 행하는 것의 극명함이 둔덕을 사이에 두고 존재했다. 허위허위 살랑살랑, 이랴이랴 자분자분 말들이 다퉜다.
그렇다지만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에는 쉼표 하나 찍어도 좋다. 머릿속 오만 잡다한 것들 쓱쓱 지우고서 하릴없는 양반님네 거들먹대는 꼴을 흉내 낸들 어떠랴. 낙수 떨어지는 소리에 귀를 한껏 세우고서 태평가를 부르면 또 어떠랴. 짐짓, 모르는 척 딴청도 피우면서 부뚜막이나 기웃거려도 좋겠다.
쉼이란 수심을 한 데 묶어 내려놓는 것이고 묶여 맺힌 것들 본연의 모습으로 풀어헤치는 것이기도 하다. 천 근의 근심 돌덩이로 지고서 백 날을 뒹굴면 뭣할까. 근심에 짓눌려 쪼그라든 마음만 남을 터라서 이왕이면 굼벵이가 낯짝을 들지 못하게 게으르고 볼 일이다. 그렇게 완성된 쉼 속에서 하품 늘어지게 하면 그만이다.
비 오는 날에는 비만 홀로 바쁘게 놔둘 일이다. 섣불리 얼쩡대지 마라. 비에 대한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