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보이나요

by 이봄


담배 한 개비 피워 물고서 서성거리는 시간 십여 분, 그 짧은 시간에 가끔이지만 혼자 흐뭇해하는 순간을 만나기도 합니다. 오늘도 그런 날 중 하루입니다. 말갛게 갠 하늘엔 티끌 하나 없었습니다. 바람은 쨍하게 시린데 어쩌자고 하늘이 맞장구를 칩니다. 바람이, 하늘이 시리고 푸르렀습니다. 배웅의 시간이었고, 마중의 시간입니다. 보이시나요? 골목을 반반 대각선으로 양분한 순간입니다. 하늘과 땅이 자로 잰 듯 교차하고 햇살이 어둠과 교대하는 순간입니다. 골목에 내려앉은 햇살이 손을 내밀고 떠나는 밤은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합니다.

"고생했어요!"

"네, 낮시간을 부탁합니다"

수문장교대식처럼 나발을 불고 격식을 차리지는 못했지만 번잡하지 않아 나쁘지 않았습니다. 관객이라고는 달랑 저 혼자인데 무에 호들갑을 떨까요.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으로 흐뭇합니다.

골목을 가로지르는 전선에 매달린 것들이 팔랑팔랑 흔들렸습니다. 깃발처럼 맑은 소리로 흔들렸습니다. 바라봄이 좋아서 싱겁게 웃었습니다. 옅은 미소가 지어졌고 말간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이런 순간이 淡交일까요? 저 혼자 좋아서 고백을 하게 됩니다.

"있잖아, 난 니가 참 좋아!"

싱거워도 어쩌겠어요. 그게 몸에도 좋다 합니다. 자극적인 것에 길들여지면 본연의 그것을 잃고야 맙니다. 맛이 됐든, 멋이 됐든 그렇습니다. 오늘 하늘엔 맑은 물이 말갛게 흘렀습니다. 옅은 꽃향기가 수줍게 불었지요. 순수해서 어여쁜 아침입니다. 봉숭아 꽃물 손톱에 물들이고서 내미는 손입니다. 어찌나 곱던지 덥석 잡고 싶었습니다.

"어머?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째요?"

황급히 잡은 손을 뿌리치는 얼굴이 발그레 꽃처럼 피었습니다.

순간으로 만나는 것들이 때로는 긴 여운으로 남기도 합니다. 십수 년이 흐른 지금에도 떠올려 미소 짓게 되는 순간은 그래서 예쁘고 소중합니다. 서성거리다 만나게 되는 짧은 순간이 뇌리에 남아 옹이처럼 기억되기도 합니다. 오늘처럼 사진 한 장을 남긴다면 금상첨화겠지요. 이 아침이 좋았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