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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 졌다

by 이봄


저 홀로 노을이 졌다.

울그락 푸르락 날궂이를 하더니만

풀썩 주저앉아 꺼이꺼이 울었다.

"대체 언놈이랑 드잡이를 한겨?"

추궁을 했지만 끝내 입을 다물었다.

때린 놈은 오므리고 자고

맞은 놈은 두 다리를 뻗고 잔다더니

이내 벌러덩 드러누웠다.

"에라이, 썩을 놈의 화상아? 잠이 온다디?"

흠씬 두들겨 맞은 몸뚱이에 멍울이 졌다.

베고 누운 산허리만 애꿎게

욱신욱신 허리가 저려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물은 흘렀고

강을 끼고 난 길에는 강물처럼

세월이 흐르고 있었다.

앰뷸런스 한 대가 요란스럽게 달렸다.

허겁지겁 소리를 쳤고 경광등이 번쩍였다.

홍해를 가르는 지팡이 발을 구르고

벼락같은 붉은 불빛 노을에 더했다.

아픈 사람이 아파 울었다.

찢긴 사람은 목젖을 긁어 쇳소리를 냈다.

꽹과리가 고막을 찢었다.

북소리는 둥둥 가슴을 울렸다.

병나발에 취한 놈이 벌떡 일어나

나발소리에 어깨를 들썩였다.

멍석이 깔리고 악공들은 신명을 더했다.

굿판이었다.

취해 흔들리는 춤판이었다.

발이 부러진 놈은 목발을 두드려

장단을 맞추어 끼어들었다.

장삼자락이 너울거렸다.

하얀 장삼자락 허공을 가를 때마다

노을 한 줌 스며들어 붉었다.

누구는 뒤뚱거렸고 누구는 절뚝거렸다.

"너는 뭐드고 있냐?

신명 나게 춤이라도 한 판 출거이제..."

등줄기에 질펀하게 땀이 흐르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노을처럼 탔다.

깨지고 자빠지고 흠씬 두들겨 맞은 것들이

벌겋게 타오르고 있었다.

져서 고운 노을이 두 다리를 쭉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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