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목련이 피었다. 맑은 햇살이 졸졸 흘렀고 투명한 바람은 쨍하게 불었다. 골목을 벗어난 한 무리의 사람들은 붉은 신호등 앞에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떨었다. 신호를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에도 시댁을 소환하고, 간밤의 남편네를 불러다가 혼꾸녕을 내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그이의 남편은 멀쩡히 일을 하다 말고 초등학교 앞 문방구 삼거리에서 무릎을 꿇고 빌고 있었다.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그것도 모자랐던지 커다랗게 '각서'라고 머리말을 단 종잇장을 내밀더니만 지장을 찍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정오의 햇살이 정수리 위에서 빛날 때였다.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꼬맹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아이들의 하교시간에 맞춰 마중 나온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정문을 주시하고 있었고, 몇 대의 승합차가 미끄러지듯 달려와 도열했다. 차량들은 봄날의 개나리보다 더 샛노랗게 도색을 했다. 차량의 앞과 뒤, 옆면 할 것 없이 내가 최고라고 울긋불긋 치장을 하고 있었다. 청룡 태권도, 용인대 태권도, 연세대 태권도.... 꼬리를 물고 으스댔다.
한 명이라도 더 관원을 모아야 했으므로 아이들을 마중 나온 관장은 한껏 치장을 하고 있었다. 주름 하나 없이 말끔히 다려진 하얀 도복이 햇살에 빛났다. 거기에 힘껏 묶은 검은 허리띠가 멋스러웠다. 젊은 관장은 젊은 학부모에게 눈도장을 찍으려 과장된 몸짓으로 서성거렸다. 아이들의 하교시간은 그래서 반짝 파시가 열렸고 그만큼 북적댔다. 마중 나온 엄마와 마중 나온 관장이 뒤섞여 한바탕 소란을 떨었다. 후둑후둑 소낙비가 쓸고 갔다.
날마다 펼쳐지는 진풍경이었다. 짧은 공연이었지만 중요 배역이나 하다못해 지나는 행인 1까지 꼼꼼하게 더블캐스팅 된 공연이었다. 이미 몇 번이고 반복된 공연이라서 내용도 뻔했지만 지루하지도 않았고, 흥미가 떨어지지도 않았다.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을 오가는 남자는 행인 5쯤 되었을까. 익숙한 공간과 시간에 스며든 풍경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꽃이 피었다고 했다. 남쪽 어디쯤에 벚꽃이 만발했고, 그 옆동네 어디에는 매화꽃이 진다고 했다. 텔레비전을 장식한 그날의 뉴스를 따라 사람들이 몰려다녔다. 이맘때면 도다리가 많이 나고, 초여름 무렵이면 멸치 떼가 장관을 이룬다는 뉴스와 다르지 않았다.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은 사람들을 한 명이라도 더 유혹하려는 몸짓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서울 사는 순이나 천안 산다는 사랑이의 앨범을 펼치면 얼굴만 다를 뿐 봄날의 풍경도, 가을날의 단풍도 다르지 않았다. 같은 장소에 배우만 바뀐 공연이 날마다 펼쳐지고 있었다. 예쁜 꽃길을 보려고 도로가 막혔다. 시원한 파도에 낚여 찜통더위에 발이 묶였다. '하나, 둘, 셋....' 카메라 앞에 선 순이가 브이자를 그렸고 허리춤에 손을 올린 사랑이가 활짝 웃었다. 바라보던 나도 싱겁게 웃었다.
한바탕 소란스러운 소낙비를 피해 자리를 빠져나왔을 때 길모퉁이에서 하얗게 핀 목련꽃을 만났다. 겨우 사람 키를 벗어난 목련이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바람은 맑고 하늘은 눈부시게 파랬다. 그 하늘에 하얀 꽃송이가 꽃으로 피었다. 매일 오가는 모퉁이였다. 그냥 뚜벅뚜벅 지나치던 목련이었다.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었다.
"하얀 목련이 필 때면 또다시 생각나는 사람. 봄비 내린 거리마다 슬픈 그대 뒷모습..."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꽃은 질 테고 또다시 봄이면 필 터였다. 그때 다시 하얀 목련을 마주했을 때 생각나는 사람이 어여쁘다. 손 잡고 노래를 같이 부른다면 그게 화려한 봄날일 터였다. 우르르 몰려가는 봄날의 무리에서 벗어나 길모퉁이 목련꽃그늘 아래 앉아 나는 또다시 너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