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言

by 이봄


가벼이 업신여기거나 하대할 수 없는 게 말이다. 그래서 말은 말씀이라 한다.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로써의 기능에 더해 공동체의 약속과 맹세가 만들어낸 최고의 철학이 말이다. 나를 뛰어넘는 확장된 내가 우리'라는 말이 되고, 그 우리의 약속과 맹세가 하나의 의미를 완성하는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 성장하고 성장한 아이가 다시 아이를 낳고, 수수만년 대를 이어 전승된 사상과 삶이 내 안에 머무는 게 말이다. 거슬러 오르면 꼬부랑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시고 그들의 치열했던 삶을 만나게 된다. 하늘은 하늘로 존재하고 바다는 바다로 철썩인다. 하늘과 바다가 그 소리로 존재하는 이유가 있을 터다. 일일이 뜻을 묻고 꼬리를 캘 이유는 없겠지만 가벼이 여겨서도 안 된다. 우습게 여겨 조롱해서도 안 된다.

말이란 낱말을 고르고 낱말을 이어 문장을 만들었을 때, 내 의식을 결정짓고 행동을 좌우한다. 거칠고 사나운 말을 가까이하면 은연중에 내 의식과 행동도 거칠어지고 사나워진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잔뜩 가시를 뒤집어쓴 고슴도치로 변한 나를 만나고야 만다. 그게 말이다. 표정 하나 몸짓 하나에도 입 밖으로 내뱉는 말에 좌지우지되는 나를 만나게 된다. 너무 과한 억측이다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가만히 돌아보라. 과하다 말하지 못하는 순간이 숱하게 쌓여있을 터다. 꽃잎에 맺힌 이슬은 꿀을 만들고 뱀의 입에 맺힌 이슬은 독을 만들고야 만다.

가시 돋친 말은 싸움의 말이고 전쟁의 말이다. 날 선 창이고 칼이다. 내가 확장된 우리를 벗어난 너이고 남이다. 생존을 위한 첨예한 대립에서 상대를 물어뜯고 할퀴는 이빨이고 발톱이다. 그러니 거친 말을 입에 올린다는 건 뒤따르는 싸움을 묵인하고 전제하는 것이다. 뒤춤에 감춘 칼자루에 잔뜩 힘을 줬으니 호흡은 가쁘고, 얼굴은 울그락 푸르락 속내를 감출 수도 없다. 말이란 게 그렇다. 창 칼을 들어 우리를 지켜내야 할 때는 그에 걸맞은 말로 무장을 하고 사력을 다해야 하겠지만, 곁에 있는 우리를 향해 날을 세운다면 어떻게 될까? 스스로가 우리'라는 울타리를 걷어내고 남이, 적이 됨을 선택하는 꼴이다. 결국은 싸움만 남는다.

아무리 예쁜 꽃을 피워낸다고 해도 선인장에 코를 박고 꽃향기를 맡는다던가, 아니면 참 곱고 예쁘다 어루만지는 일은 없다. 이미 잔뜩 가시 돋친 몸뚱이로 싸움을 걸어오는 꼴이라서 그렇고, 행여라도 가시에 찔려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거기에 있어서 그렇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그대가 되었다는 얘기다. 말은 의식을 만들고 행동을 좌우한다. 무심코 뱉는 말 한마디가 돌멩이가 되어 날아들고 때로는 향긋한 꽃으로 피어나기도 한다. 말은 그래서 말씀이다.

말씀이 참으로 어렵고 힘들다. 그렇더라도 들꽃이라도 한 송이 피워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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