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렁설렁 부는 바람은 서늘함을 넘어 썰렁했다. 열어젖혔던 점퍼의 지퍼를 다시 채웠다. 가슴을 파고드는 바람은 그만큼 차가웠고 사나웠다. 벚꽃이 피었다 졌고 진달래는 푸른 잎을 잔뜩 키우고 있었지만, 봄날의 훈훈함은 오간 데가 없었다. 그나마 한낮에야 태양의 열기에 기대 제법 따뜻한 온기가 머물렀지만 해가 지면 이야기는 달랐다. 기온은 뚝 떨어져 한기를 느끼고는 했다.
봄날이란 게 그랬다. 가뭄이 들기 시작하면 인디언식 기후제를 지내야만 겨우 봄비가 내렸고, 뭔 놈의 날씨가 벌써 초여름 날씨네 타박이라도 하려 들면 오기부터 부렸다. 삼십 도를 육박하는 낮 기온은 허둥지둥 꽃을 피워내기 일쑤였고, 가뜩이나 메마른 대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산불이 났음을 들어야만 했다. 그만큼 봄날의 날씨는 예측불허 편차가 심했다. 동짓날의 끓는 팥죽이 따로 없었다. 변덕이다. 샐쭉 토라진 여인네의 성깔머리를 고대로 옮겨온 모양새였다.
봄가뭄을 해소하는 봄비가 이틀을 내렸다. 먹는 물을 걱정한다는 뉴스가 연일 오르내리던 터라서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다. 거기다가 평년 기온을 웃도는 날씨가 한풀 꺾일 터여서 반가움은 더 크기도 했다. 거기까지였다. 잘한다 잘한다 하였더니만 적당히를 모른다. 사나흘에 한 번 비를 뿌리더니만 급기야는 장롱에 넣어두었던 두꺼운 옷을 다시 꺼내는 수고로움을 만들고야 만다. 예쁘다, 예쁘다 하였더니만 상투 꼭대기에 올라앉는 어린아이 같다. 혹여라도 순진무구 얼마나 좋으냐 말을 마라. 귀여운 것과 버르장머리가 없는 건 엄연히 별개의 얘기다. 요 며칠 봄날은 버르장머리가 없는 거다. 어쩌면 상투로도 부족해 마침내는 수염에 매달릴 판이다.
해는 떨어졌고 골목엔 갈 곳 없는 바람이 불고 있었다. 오후 늦게까지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꽃이 피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지만 추웠다. 옷깃을 여미었다. 걸음을 재촉하며 걷고 있는데 보닛 위에 웅크리고 앉은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다. 털 달린 짐승 치고는 유난히 따뜻한 것을 좋아하는 게 고양이었다. 오죽하면 볕 좋은 양지녁에 앉아 해바라기를 할까. 고양이는 그런 녀석이었다. 먹는 것 하나 변변치도 못할 터였고 온갖 눈치를 살펴야만 겨우 주린 배를 달랠 수 있을 터였다. 서두르던 걸음을 멈추고 눈을 맞췄다.
"야옹, 야옹? 거기서 뭐 해?"
되지도 않는 울음을 흉내 내며 눈인사를 건넸지만 녀석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기껏 반응이라고 해봐야 힐끔 한 번 눈을 맞추고는 예의 시선을 거두었다. 고양이의 아양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냉소적인 반응에 내밀었던 손을 바삐 거두었다. 민망했다.
"이보슈? 참치 깡통이라도 하나 주려는 게 아니라면 그냥 가던 길이나 가보슈!"
도망치려는 기색도 없었다. 잔뜩 웅크린 몸뚱이를 바짝 보닛에 붙이고는 미동도 않는다. 그럴싸한 먹거리가 아니라면 애써 차지한 따뜻한 자리를 양보하고 싶지 않다는 항의였다. 차는 방금 운행을 마치고 멈춘 모양이다. 고양이에게 다가갔을 때 훅 끼쳐오던 열기로 봐서 그랬다. 사료 몇 알이라도 손에 들린 게 아니었으므로 바로 꼬리를 내렸다. 그래, 따뜻한 곳에 앉아 몸이라도 데우거라. 너의 말처럼 나는 가던 길이나 가련다.
그렇지만 말이다. 얘야? 천 근의 그 시선만은 거두어라. 하루를 건너는 발걸음이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고단하겠지만 너는 나비란다. 너울너울, 나풀나풀 소리 없는 걸음이 나비의 날갯짓과 같다 하여 너는 나비란다. 그러니 고단한 세월이라도 부디 천 근의 우울을 매달고 터벅터벅 걷지는 마라. 끝끝내 한 마리 나비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