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박碇泊

by 이봄


야트막한 언덕이 호위하듯 늘어섰고

빨래터에 모인 아낙네들 벌써 진달래가

피었다고 호들갑을 떨면 좋겠다.

송아지가 쿡쿡 머리를 받아 젖을 빨고

게으른 고양이 담장에 앉아 졸면 더욱 좋은

수다스러운 마을을 꿈꿨을까.


묵은 숙제를 하듯 꾹꾹 눌러 편지를 쓰고

평생을 이고 진 돌덩이 미련 없이 팽개쳤다.

까마득히 이어진 길 별의 길도 지워내고

동서남북 어지럽던 나침반도 소용없어

꽃 같은 너 일러주는 바닷길에

지국총지국총 노 저어 가련마는.



왜? 이제야 오시었소.

원망의 말 됫박으로 퍼부으면

아, 미련 맞은 놈이라 그렇지 뭐....


말 많은 사내놈이 말문이 막혔다.

주워 삼킬 말들이야 차고 넘치는데

먹먹한 가슴은 숨 쉬기도 버겁다.

잔뜩 붉어진 얼굴만 애꿎게 달아오르고

너의 바다에 닻을 내린 사내놈은

그저 꿀 먹은 벙어리로 오래도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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