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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May 31. 2023

본다는 것은..,


잔뜩 까치발로 발돋움을 한 사람人이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살피는 모습이 본다見 라는 한자의 생김입니다. 주위를 경계하거나 살필 때 눈目은 또 얼마나 커질까 싶기도 합니다. 수렵이나 채취가 생활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는 시기에 본다는 것은 그만큼 목숨에 직결된 일이라서 더욱 그렇습니다. 먼저 보고 도망을 친다거나 혹은 먼저 보고 먹을 것을 채취하는 것은 일신상의 안위는 물론 부족의 안위까지 담보하는 일이라서 문자가 만들어지는 초기부터 그림문자의 형태로 존재했다고 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의 문제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을 때 사람의 의식은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정신적인 고차원의 세계에 잉여시간을 할애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소위 얘기하는 예술이라든가 철학과 같은 정신적 만족을 위한 행위에 관심을 쏟기도 하고, 물질적 투자를 행했다는 설에 나름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잉여의 산물이 계급을 나누고,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의 원활한 통제에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한 통제수단으로써의 예술과 철학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를 통한 관념적 고찰이 태동했다는 건 큰 의미입니다.

사랑이라는 것도 마찬가지 일 테죠. 마음이 움직여야만 시작과 완성이 존재하는 완벽한 정신적 만족이 사랑이라서 그렇습니다. 물론, 사랑을 어디에 방점을 찍어 바라보느냐 하는 관점에 따라 때로는 육체적 행위에 무게를 싣기도 하고, 반대로 정신적 행위에 무게를 더하기도 합니다. 그렇더라도 분명한 것은 사람에게 사랑이라는 건 정신적인 고차원의 의미가 결합했을 때 완성되는 것임에는 변함이 없을 겁니다.

새벽에 깼을 때부터 글을 쓰는 지금까지 사진 한 장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습니다. 붓을 들어 글씨를 쓰고 사진과 어울리는지 확인을 합니다. 크기며 색깔의 조합을 각도를 달리하며 요목조목 뜯어보기도 하였습니다. 어제의 시간이 고스란히 되살아나더군요. 손끝을 스치며 불어 가던바람이 살랑거렸습니다.

"어머? 예뻐라!"

곁에서 이야기하던 목소리도 바람결에 묻어납니다. 사진 한 장을 남기고 손바닥에 올려놓았던 꽃송이를 내려놓았을 때 손바닥에 스민 꽃향기는 어찌나 향기로웠는지 모릅니다. 스마트폰 화면을 응시하고 있다가 킁킁 향기를 맡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꽃향기가 훅 하고 코끝을 파고들었습니다. 관념적 감각인지도 모릅니다. 머릿속 가득 꽃송이 하나 피워 두면 정말 꽃향기를 온몸으로 느끼게 되는 거. 바람이 불었고 햇살은 손등에 앉아 온기를 묻혔습니다. 진한 장미향기는 패인 지문 사이를 파고들어 스몄지요. 기억을 더듬으면 그렇게 밴 것들이 고개를 쳐들게 되는 것만 같습니다. 착각이라도 좋습니다. 다시 살아나는 것들이 고맙기까지 합니다. 오죽하면 차가운 스마트폰의 화면 뒤에서 향기가 피어났을까요.

새벽 이른 시간에 그대를 보았습니다. 손바닥 가득 장미꽃 피더니 이내 두 눈 가득 그대가 들어오더군요. 잘 잤니? 묻기도 하고 어제는 즐거웠다고 환하게 웃기도 했습니다. 내민 손 살며시 잡았습니다. 혈관을 타고 어제의 기억들이 스며들더니만 콩닥콩닥 심장이 요동을 치고, 싫지 않은 두근거림에 새벽 창을 열었습니다. 창밖에서 서성대던 바람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하루의 시작이 시원하고 향기로웠습니다. 두 눈 가득 어제를 보았고, 그대를 안았습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었으면 하고 바라봅니다. 본다는 것은 오감으로 느끼는 기억의 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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