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섬에 산다. 그렇다고 망망대해 먼바다에 떠 있는 절해고도에 사는 것은 아니다. 연락선이 끊기면 며칠이고, 몇 달이고 고립무원의 유배살이를 해야만 하는 외딴섬에 사는 거라면 남자는 견디지 못할 터였다. 섬에 산다고는 하지만 남자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인 데다가 워낙 수다를 좋아하는 말 많은 사람이라서 그렇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면 섬은 빤히 보라보이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섬에 밤이 내리고 밤하늘에 별이 하나 둘 뜰 때면 뭍에서는 가로등이 하나 둘 불을 밝혔다. 회 한 접시 시켜놓고 낮술을 마시던 남녀는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횟집을 벗어나고 있었다. 남녀가 멀어져 가는 거리는 한산했다. 띄엄띄엄 오가는 사람들이 그나마 썰렁한 바람을 막아주었다.
포구에 정박한 배가 심한 멀미를 했다. 늦은 오후까지만 해도 잠잠하던 바다가 저녁이 되고부터는 제법 물결을 일으켰다. 방파제가 파도를 막아서고 있다고 해도 해안을 따라 몰려오는 파도를 온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바짝 이마를 맞대고 들어선 배들이 저희끼리 엉켜 출렁댔다. 이럴 때면 꼭 멀미를 심하게 하는 배가 있기 마련이다. 갑판을 씻어내기 위해 퍼올렸던 바닷물을 쏟아냈다. 왈칵왈칵 뱃머리가 흔들릴 때마다 토사물을 쏟았다.
갈매기가 날았다. 웬 떡이냐 싶게 횡재를 하는 날이었다. 토사물에 섞인 큼지막한 생선 몇 마리가 허연 배를 들어내고서 파도에 떠밀렸다. 방파제 꼭대기에 앉아 끈기 있게 기다리던 갈매기가 날개를 퍼덕였다. 긴 기다림 끝에 주어지는 보상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방파제엔 여러 마리의 갈매기가 앉아 있었지만 지루한 기다림에 자리를 뜨고 말았다. 날렵한 비행술만큼이나 기다림의 끈기도 필요한 순간이다. 멀미로 이마가 깨지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공짜 밥으로 만찬을 즐기는 행운이 찾아오기도 했다. 날이 저물면서 섬으로 돌아온 남자가 갯바위에 걸터앉아 한갓지게 바라본 뭍의 풍경이었다. 어제도 그랬고 그제도 그랬다. 오글오글 사람들로 번잡했지만 어제와 같은 일상의 단조로움을 이야기하자면 뭐 특별할 것도 없었다.
이른 잠에서 깬 남자가 주섬주섬, 설렁설렁 보따리를 쌌다. 외출에 필요한 몇몇 가지의 것들을 챙기면 충분했다. 불도 밝히지 않은 방은 깜깜했지만 익숙한 손놀림엔 거침이 없었다. 너무나 익숙한 일상이라서 뚝딱뚝딱 라면 하나를 끓이듯 뚝딱 해치웠다. 그렇게 서둘러 보따리를 싼 남자가 커피포트에 물을 올렸다. 방금 전 보따리를 쌀 때와는 사뭇 다르게 한껏 여유를 부렸다. 바쁠 것도 없으니 번갯불에 콩을 볶을 이유는 없었다. 느릿느릿 새벽이 밝기를 기다리며 커피를 홀짝거렸다.
막 사냥을 끝낸 수컷 무리가 어둑한 동굴로 들어가 각자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는 잠을 자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성난 들소의 뿔에 받힌 놈은 욱신대는 옆구리를 연신 주물렀고, 맹수를 피해 나무 위로 기어올랐던 놈은 나무껍질에 쓸린 허벅지에 침을 발랐다. 크고 작은 부상이 없다 하더라도 멍하니 앉아 어두운 동굴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치유의 시간이었다. 잔뜩 들러붙은 두려움도 떨어내야만 했고, 찢어진 살갗을 꿰매야만 했다. 동굴을 벗어난 초원은 언제나 맹수들이 우글거렸다. 목덜미가 서늘한 삶과 죽음을 나누는 외줄이기도 했다.
나룻배 하나에 의지해 드나드는 섬은 남자에게 동굴과 다르지 않았다. 새벽이면 늘 보따리를 싸고 삐걱삐걱 세상 밖으로 나갔다가 해 질 무렵이면 다시 지국총 노를 저어 섬으로 돌아왔다. 담장을 높이 쌓고 깊게 동굴을 파고 싶지는 않아서 파도를 담장 삼아 섬에 앉았다. 수시로 건너다보는 초원이 좋았다. 뻥 뚫린 바다가 만들어내는 수평선은 황홀할 지경이었다. 동굴 같은 섬에 앉아 의식처럼 온몸에 덕지덕지 침을 바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남자의 외출이 부쩍 잦아진 요즘이다. 얼마나 잦았던지 싸고 푸는 보따리가 너덜너덜 해어지기 직전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을 오가는 탓에 노도 성치 않았다. 초원엔 여전히 맹수가 송곳니를 드러내고 위협을 했지만 일말의 망설임도 그에게선 찾을 수 없었다. 얼굴만 보자면 오히려 생글생글 웃음기 띈 얼굴에다 뭔가 들뜬 표정이 역력했다. 섬에 들어와서도 줄곧 뭍에 고정된 시선을 떼지도 못했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뇌까리고는 했다.
섬돌 하나 곱게 다듬어 놓을 테니 사뿐히 지르밟고 오르시라. 천 리를 하룻길에 간다는 천리마도 배부르게 먹였으니, 그대 노둣돌 한 걸음에 밟고 올라 지축을 울려도 반가울 테지.... 그의 말들이 싱겁게 바람에 실려 뭍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섬섬옥수 어여쁜 손에 너 닿기를 바래! 불어 가는 바람을 어루만져 읊조리고 있었다. 점점이 놓인 말들이 징검다리로 길게 이어졌다. 고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