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이 끝나고

by 이봄

꼬박 하루가 지났음에도 새벽에 눈을 떴을 때 남자의 눈에는 피곤이 들러붙어 있었다. 떠나지 않겠다고 발버둥을 치며 그렁그렁 매달렸다.

"아이고 요놈아? 그만 좀 가라! 내가 이렇게 부탁할게. 하루를 꼬박 너와 놀아줬으면 됐지 얼마나 더 붙어있어야겠니?"

그렁그렁 매달렸다는 말이 어울리는 새벽이었다. 떠나지 않겠다는 놈도 눈가에도 이슬이 맺혔고, 하루의 외출만으로 온몸이 뻐근한 남자도 그렁그렁 눈물을 매단 꼴이었다. 눈 뜨고는 차마 볼 수가 없다. 애처로운 이별이다. 생이별이 따로 없었다. 떠나지 않겠다는 녀석은 남자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매달렸고 남자는 애원하듯 그런 녀석의 등짝을 떠밀었다.

한바탕 소란이 가라앉자 남자는 커피를 홀짝거리며 마셨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데에는 커피만 한 것이 없었다. 쓰고 떫은 커피는 잠든 머리를 깨우는 천둥번개였다. 휘번쩍 번개가 치고 우르릉 쾅 천둥이 울면 화들짝 놀라 뇌가 깨어났다. 새벽은 그래서 천둥이 울고 번개가 번쩍거렸다. 그렇게 요란하게 의식을 치르고 나면 열린 창으로 새어 들어오는 바람은 그만큼 시원하고 상쾌했다. 새벽 첫 바람이 그래서 좋았다. 폐부 가득 들어차는 바람으로 깊게 호흡을 하고 맑은 정신을 마주한다는 건 큰 즐거움이었다. 마땅히 해야 할 것도 없었고 새벽길을 재촉해야만 하는 일 따위는 없었지만 이른 기상은 반가운 일이었다.

그런 그였지만 어제와 오늘은 얘기가 사뭇 달랐다. 버릇이 되었으니 얼추 같은 시간에 눈을 떴다. 시계를 확인하고 잠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앉았지만 몸뚱이도 그렇고 머리도 그렇고 좀처럼 잠을 털어내지 못했다. 카피를 마셨고 화장실도 다녀왔지만 요지부동 깨어날 기색이 없다. 피곤하다 노래를 했다. 볼일을 다 봤으면 다시 자리에 누우란다. 협박이다. 조기근무의 부당함을 피력했고 과다한 업무로 인한 피로도에 관해 장황설을 늘어놓았다. 자리에 앉아 듣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빠른 수긍이었다.

몇 날 며칠을 기다렸고 새벽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시간에 일어났다. 늦게까지 깨어있던 사람이 겨우 잠자리에 몸을 눕힐 시간이었다. 새벽이 밝아오려면 한참이나 남은 시간이었지만 그렇다고 다시 자리에 눕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환하게 불을 켜고 앉아 날씨가 덥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이왕이면 시원한 바람이 설렁설렁 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보탰다. 한낮은 햇살은 구름에 숨어 숨바꼭질 놀이에 빠졌으면 금상첨화겠다 염원하기도 했다.

창문을 열고 하늘 한 번 물 한 모금 병아리 흉내도 내보았지만 깜깜한 하늘 탓에 일기를 점칠 수는 없었다.

잔뜩 부푼 가슴으로 집을 나섰을 때 남자는 웃었다. 다행이었다. 새벽녘의 바람처럼 하늘은 반반치킨을 하고 있었다. 구름 반, 파란 하늘이 반.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월요일 아침 출근길은 꼬리에 꼬리를 문 차들로 가득했다. 고속도로를 올라타는 데에만 꽤나 많은 시간이 걸렸고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접촉사고를 일으킨 예쁜 녀석들도 빼놓지 않고 보았다. 가뜩이나 차가 밀려 조바심이 나던 차에 욕을 한 바가지 쏟아부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존 거야? 뭐야?"

물론 차창을 내리지는 않았다. 도착 예정시간을 훌쩍 넘겨 그녀를 보았다. 환한 얼굴이 유난히 더 예뻤다.

호숫가 방갈로에 돗자리를 펴고 하늘 한 번, 그녀 두 번.... 병아리 놀이에 웃고 또 웃었다. 다행히 바람도 시원하게 불었다. 잔디밭을 뛰어노는 아이들이 유쾌함을 보태주었다. 술래잡기에 푹 빠진 해가 구름 뒤에 숨었으나 끝내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치지도 않았다. 그 뒤로 집에 돌아오는 시간까지 해를 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했다. 간절한 남자의 마음이 하늘에 닿았구나 생각하기로 했다. 한가롭고 시원한 하루였다. 콩닥콩닥 가슴 설레는 시간이었고 발그레 얼굴 붉어지는 시간이었다. 긴 입맞춤으로 남을 하루였다.

사진 몇 장 들춰보며 환하게 웃다가도 삐걱대는 몸뚱이에 놀라 서글퍼졌다. 그렁그렁 매달린 피곤함이 들러붙은 세월을 반증했고, 아픈 몸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었다. 순간 피식 웃었다. 남자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울기에도 좀 그랬다. 그러니 쓴웃음이라도 웃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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