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를 쪼아 새긴 사랑도 변하게 마련이다. 이끼처럼 세월이 쌓이고 비바람에 깎여 끝내는 그 뜻을 새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야 만다. 그러니 변하지 않을 사랑이라고 호언하지도 말고, 백 번을 되뇌어 장담하지도 마라.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게 또한 삶이라서 그렇다.
내 사랑은 변했다. 계절이 옷을 갈아입듯 내 사랑도 계절에 따라 말을 바꿨고 수시로 낯빛도 바꿨다. 바뀐 말과 낯빛에 부끄러운 마음도 없다. 내 사랑은 나날이 깊이를 더했고 품을 넓혔다. 한 계절에 여문 말 하나 톡 따내어 가슴 깊이 묻었다. 기억하려는 노력이다. 나의 알량한 기억에 소중한 말을 방치할 수 없어서 날마다 그리고 적었다. 푸른 이끼로 바위가 뒤덮인다 해도 훗날 꺼내어 새길 수 있게끔 나는 쓰고 그리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다.
처음엔 그저 눈을 사로잡는 너의 얼굴을 사랑했다. 보이는 것 말고는 아는 것도 없어서 몇 마디의 말을 뱉고 나면 쉬이 말을 잇지도 못했다. 사랑이었을까. 그거야말로 장담할 수가 없다. 단지, 눈길을 끌었을 뿐이고 시선을 사로잡았을 뿐이다. 하나씩 둘씩 말문이 트이고 생각하는 거며, 사는 이야기 속에서 너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두 눈을 뜨고 너의 얼굴을 바라봐야만 웃을 수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두 귀만 쫑긋 세우고도 나는 햇살처럼 환하게 웃었다. 이야기가 좋았다. 그 속에 숨 쉬는 너는 더없이 부드럽고 향기로웠다. 달빛도 없는 칠흑 같은 밤에도 나는 오감을 동원해 너를 어루만졌다. 하루를 더하고 이틀을 보탠 시간만큼 내 사랑은 변했다. 눈으로 바라봐야만 했던 너는 귀로도 보았고, 향기로 알아볼 수도 있었다. 변해도 너무 변했다 싶은 사랑이다.
잠결에 추워 이불을 끌어다 덮었다. 빼꼼히 열어둔 창으로 황소바람이 들이치고 있었는지 한기를 느꼈다. 내 의식은 깊은 수면에 빠져 코를 골아도 살아야겠다는 자율신경계는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온갖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래서 춥고, 덥고, 답답하고, 짜증스러운 변화에 대처를 한다. 그래야만 살 수 있으니 누군가에게 미루거나 책임을 회피할 수도 없다. 몸을 이루는 세포 하나하나가 제 할 몫을 다 할 때 고단한 누군가는 코를 골며 단잠에 빠진다.
자면서도 몸은 살기 위해 차버린 이불을 끌어다 덮는 것으로 충분한지, 아니면 열린 창을 닫아야만 하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적절한 대처법을 찾아낸다. 반대 상황도 마찬가지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창문을 연다던가 아니면, 선풍기를 돌려 바람의 도움을 받는다던가 하는 처방전을 내놓기 위해 절치부심하게 마련이다.
마음이란 것도 결국은 그렇다. 자는 동안의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자율신경계의 깨어있음이 사랑에도 필요하다. 첫눈에 반한 그 감정을 유지하고 키우기 위한 노력이 그만큼 중요하다. 상대의 좋은 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사랑을 더 깊고 넓게 변화시킨다. 처음에야 '너의 모든 것이 다 좋아!' 얘기하다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대체적으로 마음에 들어!' 하며 한 발 물러설 게 뻔하다. 단점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그렇게 방치된 마음은 결국에는 단점을 넘어 싫음을 찾아내는 데에 온 신경을 쓰기도 한다. 미움이다. 미워서 멀어지면 그저 타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원수가 된다. 얼마나 안타깝고 슬픈 일인가. 사랑에서 비롯된 관계가 무엇을 찾는데 몰두하느냐에 따라 돌이킬 수 없는 악연으로 끝을 맺기도 한다.
나의 마음은 늘 바쁘다. 내가 자는 동안에도 그럴 듯 한 이유를 찾아 헤맨다. 너를 더 깊게 사랑하고 싶은 까닭에 너의 장점을 찾으려 매의 눈을 번뜩인다. 그렇게 찾아낸 이유는 달콤한 말이 되어 너의 귀를 간지럽힌다.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고백을 한다. 필요하다면 뜨거운 입맞춤으로 아침을 열기도 한다. 내 사랑은 너를 만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팔색조로 변했다. 앞으로도 그럴 터라서 '내 사랑은 변하지 않을 거야!' 약속할 수가 없다. 변하지 않는 사랑은 언제 미운 이유를 찾아 헤맬지 몰라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