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人生!

by 이봄


지난밤 그들은 소주잔을 기울이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꿈을 꿨다. 소주병이 뒹굴고 타다 만 담배꽁초가 어지러웠다. 구겨진 복권이 한 자리를 차지했다. 동전에 긁힌 복권은 온몸이 상처투성이다. 긁히고 찢겼다. 찰나의 기대는 무참히 버려졌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들은 더는 애지중지 그가 어루만지던 꿈이 아니었다. 툭툭 떨어내는 담뱃재에 불과했다.

얼큰하게 취기가 오른 그들은 가로변의 복권판매대를 찾아 휘적휘적 꿈을 꾸었다. 오가는 걸음은 구름 위를 걷듯 아득하고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이왕이면 길은 좀 멀었으면 좋았을까? 달콤한 꿈이 조금 더 길어도 좋았을 텐데, 오가는 길은 기대와는 달리 그다지 길지 않았다. 공원을 가로질러 몇 개의 벤치를 지나치면 그만이었다. 보안등은 어둑한 길을 훤히 밝혀주었다. 어둠이 내린 공원은 그들이 오가는 길을 따라 달콤한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꽃밭을 빠져나온 바람은 향긋했고 끈끈했다.

더는 기댈 곳 없고 꿈꿀 것 없는 이들은 은박이 반짝이는 복권 한 장에 마지막 꿈을 걸었는지도 모른다. 댕그랑 대는 동전 하나를 꺼내 들고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복권을 긁었을 터였다. 꿈이 반짝였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그의 눈도 반짝거렸다. 어쩌면 햇살이 좋은 작은 집을 구경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반짝이는 자동차를 어루만지며 풍광 좋은 길을 상상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꿈에 한 걸음 다가서서 서성거렸다. 몇 번을 오갔을까? 제법 많은 복권이 뒹굴고 있었다. 그들이 떠난 자리엔 일확천금의 꿈이 피었다 허망하게 떨어졌다. 구겨지고 찢긴 꽃잎이 공원 바닥을 뒹군다.

달콤한 꿈은 없다. 요행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절망하지도 않았다. 아침을 기다렸고 뿌옇게 동터오는 새벽을 서성였다. 쓰임을 다한 한 묶음의 이면지를 뒤집어 붓을 들면 그만이었다. 바람이 어떻고, 햇살이 말갛게 불어 간다고 너스레를 떠는 것으로 남자는 꿈을 대신했다. 비닐봉지에 주워 담는 그들의 꿈을 바라보며 그저 싱겁게 미소 지었다. 쯧쯧 혀를 찼다. 그렇게라도 매달리고 싶은 무엇이 씁쓸했다.

얌전히 비가 내렸다. 허둥지둥 가방 하나 머리에 얹고 청춘이 빗속을 뛰었다. 종일 많은 비가 예상된다고 안전안내문자가 날아들었다. 굳이 문자에 기대지 않아도 비가 올 거라는 건 하늘 한 번 올려보면 알 수 있는 날이었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까짓 비쯤이야 내리면 맞지 뭐.... 그래도 나쁠 것 없다 싶었다. 조심조심 돌다리를 두들겨 건너는 것은 남자 하나로 족하다 생각했다. 청춘은 그렇게 빗속을 뛰고 덤불을 헤쳐가며 나아가는 거다. 때로는 무모한 길을 걷기도 하고, 때로는 미련 맞은 짓도 하는 게 청춘의 특권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은 후미진 공원의 벤치에 앉아 복권이나 긁는 짓은 말아야 한다. 소주잔을 기울이며 기운 인생의 반전을 꿈꾸면 안 된다. 지난밤의 그들은 적어도 심장 뜨거운 청춘이 아니었길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남자도 꿈을 꿨다. 이면지 가득 넘쳐나는 말들이 달콤한 꿈이었고, 향긋한 소원이었다. 예쁜 그대에게 보내는 고백의 말이 남자를 지탱하는 꿈이었다. 가끔 밥을 먹고 커피 한 잔 마시는 게 남자에겐 복권을 긁는 일이었다. 일확천금의 꿈은 없었다. 그저 주절주절 사랑의 말이나 쏟아내면 행복한 남자였다. 달콤했을까? 아니 달콤할까?


"달콤한 人生!"

새벽을 밝혀 남자는 달콤한 인생을 꿈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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