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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셔요?

by 이봄


날마다 보던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다. 날마다 내리던 비가 보이지 않는 건 궁금하지도 보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또 모르지요. 가뭄이 심하고 멀쩡히 바라보는 내가 심한 갈증으로 허덕이게 된다면 '날마다 나는 학의 목을 하고서 널 기다릴 거야' 아양을 떨는지도 모릅니다. 세 치 혀로 뱉는 말이지만 쇳덩이의 무게가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인 것을 어쩌겠습니까. 늦었다 싶습니다. 언제 책을 펼치고 세상의 겸양과 선비의 대쪽을 배워 품에 품을 수 있겠습니까. 생긴 대로 산다는 말이 찰떡입니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해 뜨고, 비 내리면 없는 호랑이라도 장가를 보내야지요.

두 분 할머니가 오늘은 소풍길에 나서지 않은 모양입니다. 얼핏 듣자 하니 동생할머니가 피부과에 레이저 시술을 받느라 안 보이겠다 싶은 생각이 드네요. 검버섯을 열심히 빼내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못해도 여든은 넘어 보이는 할머니지만 여자는 여자구나 했지요. 얼룩덜룩 얼굴에 검버섯이 피면 분명 가슴에는 오락가락 비가 내리겠구나 하게 되네요.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에 나이를 들먹인다는 게 죄송한 일이지요. 내년에는 쌍꺼풀 수술을 받겠다던 할머니인 걸요. 오늘은 햇살이 양산으로도 가릴 수 없는 날입니다. 뾰족한 가시를 잔뜩 세우고 쏟아집니다. 소풍이야 하루쯤 미뤄도 좋겠지요. 그 사이 낯이 익었다고 궁금해서 주절주절 떠들게 됩니다.

먹장구름 물러난 자리마다 흰구름 두둥실 한가롭고, 설렁설렁 부는 바람은 시원합니다. 한가로운 정오입니다. 한가롭게 바라보는 풍경이 그렇습니다. 다만, 나는 바짓가랑이 붙들고 매달리는 그대가 있어 한가로운 중에 바쁘기도 합니다. 말이 좀 이상하지요. 이상해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보고 싶은 마음에 동동동 구름처럼 그대 띄워놓고서

"여기 좀 보셔요!"

애타게 손을 흔드는 나랍니다. 무심하지요. 고래고래 고함도 치고 집게발 치켜든 게처럼 손을 흔들어도 본체만체 쳐다도 보지 않습니다. 엷은 미소 머금고 느릿느릿 흘러만 갑니다. 그대는 무심하게 구름으로 흘러갑니다. 휴대폰 가득 저장된 얼굴 하나씩 뜯어보는 한낮입니다. 무심하거나 말거나 사진 들여다보는 재미도 나쁘지 않네요.

목이 잔뜩 쉰 매미가 맴맴맴 울어요. 자동차의 소음에 묻힐까 목청을 한껏 높여보지만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더벅머리 숫총각으로 생을 마감할 수도 있고, 어여쁜 암컷을 만나 알콩달콩 사랑을 나눌는지는 가늠할 수가 없네요. 팔자려니 해야지요. 울고불고 칭얼댄다고 해서 없던 각시가 나타날 일은 없잖아요.

예뻐지고 싶은 여자의 마음이나, 사랑받고 싶은 남자의 마음이나 애를 태우게 마련입니다. 그 애태움에 가상함이 더해진다면 좋겠습니다. 지나치며 윙크 한 번만이라도 보내준다면 녀석은 젖 먹던 힘까지 다 쏟아내며 울겠죠.

"보셔요? 보시어요!"

해도 없는 새벽에 일어나 나도 그렇게 울었답니다. 맑은 정신에 띄워놓은 그대는 어여뻤지요. 붓을 들고는 무엇을 쓸까 잠시 망설이는데, 망설이는 나를 밀어내고 이내 말 하나 떠오르더군요.

"보셔요? 여기 좀 보시어요!"

달처럼 곱게 그대 마음에 뜨고 나는 버선코 뒤집듯 마음자락 하나 펼쳐 들지요. 이렇듯 그대를 사랑합니다 내세우는 말들이 더없이 좋았습니다. 나이가 무슨 문젠가요. 나는 맴맴맴 사랑받고 싶은 남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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