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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Jul 28. 2023

재미없어!


주말을 앞둔 금요일, 날씨 탓일까? 공원을 오가는 사람이 눈에 띄게 줄었다. 하릴없이 공원을 배회하던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빵부스러기에 악다구니를 쓰며 달려들던 비둘기들도 순한 양처럼 나무그늘에서 날개를 접었다. 하늘 가득 흰구름이 뭉게뭉게 피어 잠깐씩 해를 가린다. 미소가 사라진 사람들이 발걸음을 재촉했다. 양산을 받쳐 든 여인이 종종걸음으로 공원을 빠져나갔다. 뒤이어 널따란 우산을 펼친 사내가 그늘의 여유일까. 한껏 느긋하게 역사로 향했다.

뜨문뜨문 끊어졌다 이어지길 반복하며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그 사이사이에 바람이 불어 열기를 몰아내고 있었다. 분수대의 물줄기는 하늘까지 기어오르다 순간 툭하고 흰 포말로 부서져 시끄럽다. 이웃한 꼬맹이들이 몰려와 재잘대기도 했었다. 오늘은 꼬맹이들도 없다. 분수 혼자 재잘대다가 제풀에 지쳐 입을 다물었다. 후끈 달아오른 한낮의 열기만 가득한 공원에 앉아 바라봄이 따분하다. 팔각지붕 멋들어진 정자의 그늘도 폭염의 기세를 다 막아주지는 못했다. 습한 람과 뜨거운 열기가 때때로 파고들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마치 전세라도 얻은 듯 훼방꾼이 없는 거였다. 알아들을 수도 없는 이국의 말이 시끄럽지도 않다. 커다란 배낭을 둘러멘 이주노동자들이 떼로 몰려와 정적을 깨기도 했지만 오늘은 그마저도 없다. 연신 날아드는 폭염 재난문자가 분명 한몫을 한 게 분명하다. 노년의 어른들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외출을 자제해 달라는 문자에 고개를 끄덕였을 그들이 사라진 공원은 한적하다. 소일거리가 없는 이들은 공원을 찾아 시간을 보내는 게 하루의 일과였다. 이 땅에서 잔뼈가 굵고 머리가 하얗게 센 그들이었지만 점점 여름은 사나워지고 있었다.

소낙비처럼 굵은 땀방울을 쏟았다. 후닥닥 툭탁 속옷이 젖었다. 하루의 일과가 시작되는 시간이었고 햇살은 정수리 근처에도 닿지 못한 시간이었지만 흥건히 땀이 흘렀다. 지난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공원은 난장이 펼쳐졌던 모습 그대로다. 정신이 사나울 정도로 지난밤은 시끄러웠던 모양이다. 공원의 사잇길을 오가며 밤의 흔적을 지운다. 시간이 지날수록 홀쭉했던 비닐봉지는 배불뚝이가 된다. 더는 먹을 수 없다고 발버둥 칠 때쯤 소낙비 몰려가듯 흠씬 땀에 젖었다. 길지도 않은 시간이지만 여름의 햇살은 만만한 시간이 없다.

그늘 좋은 벤치 등받이 깊숙이 몸을 기대고서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끊어야지 하면서도 끝내 끊지 못하는 담배다. 땀을 훔쳐내며 피워 문 담배는 시원한 바람과도 같았다. 말끔해진 공원을 바라보는 기분도 나쁘지 않다. 나름의 뿌듯함을 선물하기도 했다. 선택의 여지없이 주어진 일이지만 일을 통한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노동은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땀 흘려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활력을 얻기 때문이다. 재미다.

목숨을 갉아먹는다는 걸 모르지도 않는데 담배를 피워무는 것도 결국은 중독된 재미다. 사는 것에 재미란 놈을 들어내면 남는 게 없다. 연인과의 뜨거운 사랑도 결국은 재미다. 재미가 없으면 갖은 아양을 떨고, 간 쓸개 다 빼어줄 듯 설설 길 이유도 없다. 세대를 잇기 위한 본능이라고는 해도 본능에 더해진 재미가 농간을 부리는 거다.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다 하듯 재미를 찾을 수 없다면 그 어떤 자리도 의미가 없는 게 사람이다.

말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것도 결국은 그 속에 교감하고, 공유하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어땠니? 묻는 말에 보따리 하나 풀어헤쳐 너스레를 떠는 것도 그래서 큰 즐거움인 거다. 묻는 말이 없으니 떠들 말도 없다. 고작해야 잘 잤니? 한마디 말에 지나지 않는 그 말이 재미의 시작이다.

"오늘은 어땠니?"

재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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